“법원을 믿지 못하고 압력으로 비칠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누가 법관을 할 생각을 하겠나.” 지난달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은 ‘법원에 정치적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작심한 듯 이같이 말했다. “법원을 믿고 조용히 기다려 주시면 우리나라 전체가 한 단계 더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이 대표의 대북 송금 사건 관련 재판장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벼르는 것에 대한 탄식이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15일)과 위증교사 혐의(25일) 1심 선고가 임박하면서 거야의 사법부 압박이 나날이 노골화되고 있다. 그의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분수령을 앞두고 겁박에 가까운 여론전이 이어지는 중이다.
지난달부터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은 100만 명 넘게 서명한 ‘이재명 무죄 탄원서’를 모았다. 이들은 “판사님들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른 판단이 많은 국민의 정의와 상식과 일치하리라 믿고 있다”고 쓴 탄원서를 재판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에 질세라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이재명은 무죄’라는 손팻말을 든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릴레이 서명 운동 중이다.
‘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도 이 대표 ‘변호의 장’이 된 지 오래다. 국정감사장에선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 실무자인 고 김문기 씨를) ‘모른다’ 한 것은 주관적 인식의 영역이라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합리적인 법 해석”(전현희 최고위원)이란 주장이 쏟아졌고, 국회 의원회관에선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의 ‘방탄’ 토론회가 잇달아 열렸다.
민주당도 이재명 지키기에 당력을 쏟고 있다. 기존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응하던 ‘검찰독재대책위원회’로 부족하다 싶었던지, 박균택 김기표 김동아 이건태 등 이른바 ‘대장동 변호사’ 출신 의원들을 총동원한 이재명 사법리스크 전담대응기구인 ‘사법정의특별위원회’를 이달 5일 추가로 출범시켰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검찰의 공소장은 ‘거짓 시나리오’”라며 “법원의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한준호 최고위원)는 등 사법부를 향한 노골적인 압박이 이어졌다. 과연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받는 공당의 지도부 회의에서 나오기에 적절한 발언인가 싶다.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이 대표는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까. 요즘 본인도 밤낮으로 SNS에 무죄를 주장하며 ‘셀프 여론몰이’ 중인 걸 보면 적어도 말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그토록 무죄를 자신한다면 이렇게 세 과시할 일이 아니다. 이러면 사법부가 실제 무죄 판결을 내려도 “170석 거야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냐”는 반대 진영의 반발과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하다. 민주당 스스로 명분을 내주는 셈이다.
요즘 민주당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장외집회를 열고 있다. 이 대표 선고 다음 날인 16일엔 조국혁신당 등과 대규모 합동 집회를 한다고 한다. ‘김건희 특검’을 내세웠지만 판결 내용에 따라 ‘이재명 무죄 환영’ 또는 ‘이재명 유죄 반대’ 집회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민주당은 집회 때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주문처럼 외쳐 왔다. 그런 민주당이야말로 민주주의 법치 정신을 다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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