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가 ‘분야별 성과’를 발표하는 가운데 11일엔 지난 2년 6개월간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도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자평하는 자료를 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에 그쳤고, 올해 상반기 수출이 전년 대비 9.1% 증가한 것을 핵심 성과로 꼽았다. 역대 최고 수준인 고용률, 가계부채 및 국가채무 연착륙 등도 강조했다. 7일 윤 대통령이 “이제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밝힌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장기간의 고물가, 고금리로 지친 국민들로선 어리둥절한 자화자찬이다.
정부가 스스로 잘했다는 근거로 든 지표를 따져봐도 실제 성과로 보긴 어렵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꺾이긴 했지만, 이미 수년간 고물가의 충격이 누적된 상태다. 수출은 지난해 말부터 살아났지만 7월부터는 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건전 재정이란 말이 무색하게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나면서 각종 기금을 동원해 돌려막기를 하는 상황이다. 역대 최고의 고용률이라지만 질 낮은 단기 일자리만 늘면서 고용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
정부가 강조하지 않는 지표는 더 어둡다. 경제의 종합 성적표 격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해 1.4%에 이어 올해도 2%대 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저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당시 2,600 선이었던 코스피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도 오히려 2,500 선으로 내려앉았다. 고금리 시대를 겪으며 빚을 줄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역대 최대의 가계부채와 정부 채무에 짓눌려 내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성적표만큼이나 경제 정책 운용 방식도 실망스러웠다.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구조개혁의 기치를 들었지만 구호만 요란했을 뿐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 등이 일관성 없이 수시로 뒤집히고 부처 간 엇박자를 보이며 오히려 집값과 가계부채를 자극했다. 정부의 섣부른 가격 통제와 금리 개입이 반복되며 시장 왜곡을 불러왔다. 경제에 먹구름이 끼는데 지난해엔 ‘상저하고’, 올해는 ‘회복 조짐’이라는 낙관론만 설파했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당장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재집권하면서 한국의 통상, 산업, 금융 등 경제 전반에 태풍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정부가 내세우는 지표인 수출과 물가부터 흔들릴 수 있다. 정부는 낙관론에서 벗어나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해 임기 후반기 경제 전략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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