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뉴욕 마라톤 대회… 1970년 시작한 세계 6대 마라톤
150여 개국 5만5634명 참가… 5개 자치구 넘나드는 꿈의 코스
NYT “뉴요커가 가장 좋아하는 날”… 대선-전쟁 탓 삼엄한 테러 경비
스포츠 통한 경쟁과 동지애 공존… 고용 창출 등 경제효과 5600억 원
《“트럼프가 (선거를) 뛸 수 있으면 너도 뛸 수 있어! (If trump can run so can you!)” 3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로 들어서는 59번가 거리. ‘뉴욕 마라톤 대회’의 결승점 약 300m 앞인 이곳은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성, 여기저기서 쉼 없이 딸랑이는 작은 응원용 종소리로 가득했다. 차량 통행이 금지된 맨해튼의 텅 빈 차도 위로는 마라토너 수천 명이 달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주자들의 행렬이 거대한 파도 같은 장관을 이뤘다.》
마라톤 코스 주변에서 거리 응원에 나선 이들은 여기저기서 자동차 문짝만 한 크기의 초대형 사진을 피켓으로 만들어 든 채 자신들이 기다리는 얼굴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라톤에 참가한 자신의 가족, 친구, 연인의 얼굴이었다. ‘웃어봐. 너 돈 내고 왔잖아(Smile, you paid for this)’, ‘네 개도 널 자랑스러워할 거야(Your dog is proud of you)’처럼 재치 있는 문구로 지친 마라토너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는 응원 피켓도 여럿이었다.
● 마라토너와 시민들의 축제
미국 보스턴과 시카고,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일본 도쿄 마라톤과 함께 세계 6대 마라톤 대회로 꼽히는 뉴욕 마라톤이 올해도 뜨거운 관심 속에 개최됐다. 뉴욕 마라톤은 자유의 여신상 남쪽의 스태튼아일랜드에서 출발해 26.2마일(42.195km)에 걸쳐 브루클린-퀸스-맨해튼-브롱크스 등 뉴욕시 5개 자치구를 모두 통과한다. 마라톤 코스를 따라가면 뉴욕의 도시 전경과 이스트강, 센트럴파크의 가을 풍경 등 뉴욕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세계 마라토너들에겐 꿈의 대회로 꼽힌다.
뉴욕 마라톤은 1970년 127명이 센트럴파크 주변을 4바퀴 뛴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1976년 도시 전체 규모로 확장됐고, 올해는 세계 150여 개국에서 5만5634명의 마라토너들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뉴욕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매년 초 뉴욕 마라톤을 주관하는 뉴욕 로드 러너스(NYRR)의 웹사이트 추첨에 응모해 당첨되거나 △전년도에 9개의 NYRR 예선 레이스를 달리고 1개의 예선 이벤트에서 자원봉사하거나 △자선단체나 어린이 기금 모금의 일원이 되거나 △해외 참가자를 위한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는 등 일련의 조건을 만족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해마다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뉴욕 마라톤은 참가자만큼이나 뜨거운 거리 응원의 열기로 더 유명하다. 달리는 사람은 6만 명이 안 되지만, 응원하는 사람들은 30배를 훌쩍 넘는 200만 명에 이른다.
흥미로운 건 세계 각국이나 미국 각지에서 응원을 위해 참가자와 함께 날아오는 이들도 많지만, 그저 마라톤 응원에 동참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 나오는 뉴욕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마라톤이 개최되는 일요일 뉴욕의 아침은 신문 기사와 TV 뉴스 모두 마라톤의 열기로 들썩인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기에 흐르는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찬 마라톤 대회 당일은 뉴요커들이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고 전했다.
● 정치적 피켓도 많아…경계 삼엄
해마다 시민들의 축제가 되어준 뉴욕 마라톤이지만, 올해는 어느 때보다 삼엄한 경비 속에 대회가 치러졌다. 미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대통령 선거(5일) 이틀 전에 대회가 치러진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2013년 보스턴 마라톤의 폭탄 테러 사건 이후 마라톤 대회의 안전 문제에 만전을 기해 왔다. 그해 4월 15일 제117회 대회 당시 경기 시작 4시간이 지난 시점에 결승점 부근에서 두 번이나 연달아 폭탄 테러가 발생해 3명이 목숨을 잃고 180여 명이 다쳤다. 올해도 응원 참가자들은 응원 라인에 진입하기 위해 통로 입구에서 가방을 열고 경찰에게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다.
축제 분위기의 마라톤 대회였지만 정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응원 피켓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이 강한 뉴욕답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비꼬거나 풍자한 피켓이 많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참가자들은 완주를 마친 뒤 이스라엘 국기를 몸에 두르고 거리를 걸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들을 돌려달라며 전단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NYRR의 네나 린치 이사회 의장은 마라톤 개최를 맞아 NYT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스포츠를 통한 소통과 우정’을 강조했다. 그는 “외모나 출신지, 직업, 달리는 속도와 상관없이 모든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피니시 라인에 도달하기 위해 걸은 길을 소중히 여긴다”며 “서로를 이끌고 지원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과 경기에서 서로를 위한 격려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경쟁과 동지애의 공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마라톤으로 뉴욕 경제 활성화
뉴욕 마라톤은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축제와 같은 효과를 낸다.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참가자와 관람객 등이 몰려와 마라톤 대회 전후로 일주일가량은 호텔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된다. 거리 곳곳에선 마라톤과 연계된 티셔츠나 모자를 쓰고 관광을 즐기는 세계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뉴욕 지역사회도 마라톤 참가를 위해 뉴욕을 찾은 이들을 환대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뉴욕 공립 도서관은 마라톤을 주제로 한 책들을 큐레이션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은 마라토너인 미술관 직원이 특별 투어를 진행했다. 식당이나 카페 입구마다 마라토너를 환영하는 문구들이 쓰여 있는 건 물론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유명한 도시인 만큼 ‘알라딘’이나 ‘라이온 킹’ 등 인기 뮤지컬 공연은 뉴욕 마라톤 참가자들을 위한 관람료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NYRR은 마라톤(해외 거주자 참가비 358달러·약 54만 원) 외에도 완주 후 애프터 파티(인당 35달러)를 개최해 참가자들을 뉴욕에 더 머무르게 한다. 뉴욕 마라톤이 뉴욕에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연 4억 달러(약 56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2006년 이후 자선 활동을 위해 뉴욕 마라톤에서 모금된 금액만 5억2000만 달러에 이른다.
고용 창출 효과 역시 크다. 뉴욕 전역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행사인 만큼, 행사 앞뒤로 일시 고용되는 인원이 수천 명에 이른다. NYRR은 “자원봉사자 수만 1만 명”이라고 전했다.
올해 뉴욕 마라톤은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남자 엘리트 부문에서 네덜란드의 압디 나게예가 2시간7분39초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여자 엘리트 부문에서는 케냐의 셰일라 체프키루이가 2시간24분35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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