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언론의 예상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승으로 끝났다. 트럼프 당선인은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에 이르는 러스트벨트 경합주를 모두 석권하며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했고 2016년, 2020년 대선 결과와는 달리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도 승리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민주당 후보보다 득표율이 높았던 것은 2004년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재선한 이래 처음이다. 2000년과 2016년 대선 당시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됐지만 전체 유권자 투표에선 과반을 이루지 못했다. 이 때문에 2024년 선거가 미국 유권자의 재편(realignment)을 암시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조-히스패닉, 민주당 지지 철회 늘어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은 노동자와 소수 인종이다. CNN의 이번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유권자들과 노조 가입 가구원들에게서 모두 50% 이상을 득표했다. 하지만 이들이 해리스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은 2020년의 조 바이든 후보에 비해 일제히 낮아졌다. 특히 노조 가입 가구원들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이탈이 눈에 띈다.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후보에 비해 해당 유권자들로부터 각각 16%포인트, 33%포인트를 더 득표했다. 반면 올해 해리스 후보는 8%포인트, 6%포인트만 더 얻었을 뿐이다.
민주당 주요 지지층이 이탈한 원인은 기본적으론 경제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미등록(undocumented) 이민자는 급증했다. 미등록 이민자 증가로 노동 공급이 확대됐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떨어졌다. 그 결과 동일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실업으로 내몰렸다. 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펼쳤던 완화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9%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실질 임금이 낮아지는 상황을 겪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 일부는 민주당 지지를 거두기 시작했다.
히스패닉과 노동자 계층의 이탈 속에서 해리스 후보는 흑인 여성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특성을 바탕으로 흑인과 여성 표 결집에 집중했다. 히스패닉이 다수 거주하는 애리조나, 네바다 등의 선벨트 경합주를 잃더라도 러스트벨트 경합주에서 모두 승리할 경우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 과정에서 히스패닉뿐 아니라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이탈 역시 심각해졌다. 노동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해리스 후보는 경합주 중 단 1곳도 차지하지 못하며 패배했다.
대표적으로 해리스 후보는 국제팀스터형제단(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s)과 같은 러스트벨트 지역 주요 노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해당 노조는 2020년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나, 2024년 대선에서는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번 대선을 두고 “민주당은 노동계급을 버렸다. (이에) 노동계급도 민주당을 버렸다”고 했다.
이민자 급증으로 실질임금 낮아진 영향
2024년 대선 결과는 미국 유권자층의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2024년 전통적 유권자들이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에게 투표한 비율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생애 첫 투표자들의 투표 행태는 크게 달라졌다. 2020년 대선 당시 생애 처음으로 투표했던 유권자들은 민주당 후보를 32%포인트 더 지지했으나, 2024년 대선의 생애 첫 투표자들은 공화당 후보를 13%포인트 더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젊은 히스패닉과 노동자들이 있다. 2024년 선거에서 나타난 투표 행태 변화가 앞으로 미국 정치에 장기적으로 고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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