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특별한 곳에 다녀왔다. 원로 건축가 김원 선생의 아들 김태윤 셰프가 저녁 초대를 했는데 그 집이 다름 아닌 김원 선생의 집이었다. 두 사람 중 먼저 인연을 맺은 분은 김원 선생이었다. 잡지사에서 일할 때 그와 두어 차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소반이나 분청, 한옥에 대한 애정이 인자한 성품과 함께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기품 있고 아름다운 선생의 집도 흠모했다. 정원이 딸린 오래된 구옥. 그 옆으로는 어느 지방에서 해체되는 한옥이 안타까워 서까래와 기둥을 옮겨와 마당에 이축(移築)한 작은 사랑방이 있었다. 옥상에 서면 마당의 감나무와 저 멀리 인왕산이 낭만적이면서도 듬직하게 펼쳐졌다.
김태윤 셰프를 알게 된 건 그 후였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아워플래닛’이라는 지속가능미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로, 구례로, 울릉도로 돌아다니며 귀하고, 색다르며, 오래된 먹을거리를 찾아 동네 어르신들의 조리법까지 가미해 새로운 요리로 선보이는 것이 주요 활동이다. 삼겹살이나 광어처럼 한 종류의 먹을거리만 집중적으로 소비하다 보면 생산자도 그 상품에만 매달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점점 한쪽으로 치우친 미식 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종의 다양성을 위협해 인류와 생태계에도 좋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몇 차례 식당 겸 연구소인 이곳에 방문해 맛있고 신기한 음식을 맛보다 이들과 가까운 사이가 됐고 그날의 저녁 초대는 그렇게 이뤄졌다. 술자리를 펼친 곳은 아버지의 한옥 사랑방이었다. 한지 바른 양쪽 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한쪽으로는 마당 정원이 또 한쪽으로는 옥인동 일대의 마을 풍경이 생생했다.
“어릴 적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 방배동에 살았어요. 처음 이곳에 와서는 아버지만 행복했어요. 누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동네에 슈퍼가 없어서 뭘 사려면 저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야 했어요. 어머니도 일이 많아지고, 7, 8세이던 저도 뭐 딱히 좋아할 만한 것이 없었지요. 이 정원은 아버지가 가꾸신 건데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차례대로 계속 꽃이 피어나요. 지금은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람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작았어요. 그만큼 시간이 흐른 거죠. 처음에는 심드렁했지만 이곳이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저란 사람의 바탕이 된 거죠. 자연이 좋고 자연에서 편안한. 최근에는 하동에 작은 집을 마련해 서울과 하동을 오가며 살고 있어요. 그곳은 아직 사람 사는 마을 같아요.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 한참이 걸리지요. “와서 차 한잔해” 하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또 누가 오면 다시 “와서 차 한잔해”, 서두르는 법이 없어요. 덕분에 고속도로를 타고 분당 정도를 지나면 옥죄던 마음이 술술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하동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버지가 살던 이 집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는데 이 집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산다고 하면 상상이 안 돼요. 이제 저도 아버지만큼 이 집을 좋아해요.” 김태윤 셰프의 말이다.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받은 아들의 유산이 근사하게 느껴져 내 가슴까지 펴지는 기분이었다. 집이 나란 사람의 바탕이자 정서, 그리고 땅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또 그걸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참으로 귀하고 건강한 부자(父子)이자 진정한 부자(富者)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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