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망국병’ 낙하산 인사 논문 쓴 쇤헤어 교수
‘고소영 인사’에 흥미, MB 낙하산 분석… “정치적 인맥이 경제-복지 갉아먹어”
비효율적 제도와 효율적 개인 인상적… “제도-규제 개혁하면 더 잘 해낼 것”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와 공공부문 인사와 관련해 어김없이 신조어가 등장한다. 연예인 이름을 활용한 작명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 땐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선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로 변주되더니, 윤석열 정부에선 다시 ‘박보검’(이명박계·보수·검찰)이 소환됐다. 매 정부마다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늘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의 별칭이다.
2008년 서울대에 교환 학생으로 와 있던 24세의 독일 대학생 다비드 쇤헤어에겐 이런 현상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여서 ‘고소영’ ‘S라인’(서울시 라인) 같은 신조어가 오르내렸는데, 인사의 키워드가 이렇게 회자되는 것을 독일에선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독일에선 한국의 대통령처럼 특정인이 폭넓게 인사권을 행사하지도 않았기에 인사가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후 영국에서 재무금융학 박사 과정을 밟던 쇤헤어는 논문 주제를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접했던 기묘한 키워드를 다시 떠올렸다. 한국의 ‘낙하산 인사(parachute appointments)’에 대해 실증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 논문이 주목받으면서 그는 2016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됐다. 지난해 9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다시 한국에 들어온 그를 13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 “공기업 낙하산, 연간 GDP 0.41% 손실”
쇤헤어 교수의 박사 논문 제목은 ‘정치적 인맥과 배분 왜곡’이다. 그는 “MB 정부의 낙하산 인사들이 연줄로 얽힌 기업들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와 현대건설을 키워드로 공기업 인사의 영향을 추적했다. MB 취임 이후 42개 대표 공기업에서 고려대 또는 현대건설 출신 사장이 3명에서 12명으로 급증했다. 낙하산 인사의 영향은 정치적 연줄과 학맥을 기반으로 공기업 하위직으로, 민간기업으로 낙수효과처럼 번졌다. 쇤헤어 교수는 “‘MB 네트워크’에 힘입어 공기업을 장악한 사장과 임원들이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민간기업에 조달 계약을 더 많이 할당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민간 은행에서도 확인됐다. ‘민간 부문으로 확장된 정치적 보은과 정실인사’라는 논문에서 쇤헤어 교수는 은행을 장악한 MB 인맥이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기업들의 여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그는 “MB 당선 이후 민간 은행들도 고려대 출신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을 대거 선임했고, 고려대 출신 임원들이 있는 기업에 더 많은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쇤헤어 교수의 관심은 낙하산 인사 자체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얼마나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는지, 어떤 사회적 비효율을 가져오는지 확인하는 게 연구의 목적”이라고 했다. 쇤헤어 교수는 “MB 네트워크의 공기업이 같은 네트워크의 기업에 할당한 계약의 결과를 분석해 보니 비용 증가, 공사 부실, 공기 지연 같은 부작용이 더 많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며 “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0.41%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MB 네트워크와 같은 연줄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가정하면 경제적 손실은 연간 GDP의 1.08%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분석 기간인 2008∼2011년 전체를 따지면 60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손실이다. 은행에서도 같은 네트워크의 임원이 있는 회사에 대출을 해준 경우 일반적인 대출 회수율보다 2.84%포인트 낮았다. 낙하산 인사가 은행에 손실을 끼치고 금융 부실을 키운 것이다.
쇤헤어 교수는 “연구의 목적은 특정 정부나 인물, 네트워크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주요 요직에 자기 사람을 꽂아 넣었고, 민간에서도 정치적 연줄을 기대한 코드 맞추기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 “이 같은 정치적, 사회적 인맥은 비즈니스 거래를 왜곡해 경제적 자원 배분에서 거대한 왜곡을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과 사회 복지를 저해할 수 있다”며 “전문성 없는 정치적 인사가 횡행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능력과 실적에 기반한 인센티브 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했다.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해소할 해법은 뭘까. 쇤헤어 교수는 “낙하산 인사는 지지에 대한 보상과 향후 정치 과정에서의 동맹을 확보하기 위해 발생한다”며 “한국처럼 임명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시스템에서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특정 인사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줄이고, 전문성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 독립적 기구를 통해 공기업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독립 기구를 통해 공공기관장을 임명하고 정부에선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제도 효율성 높이면 한국 잠재력 충분”
쇤헤어 교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에서 공부하다가 2008년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서울대에서 공부했다. “일본 교토대와 서울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한국행을 결정했는데 돌이켜보면 인생을 바꾼 선택이었다”고 했다. 학자로서의 출발점이 된 박사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행운이었지만, 평생의 반려도 한국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독일어-한국어 언어 교환을 위해 만난 서울대 법대 여학생과 장거리 연애 끝에 2016년 결혼했다. 지난해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한 것도 복직하는 아내와 한국에서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쇤헤어 교수는 “한국에서 1년 넘게 살아보니 독일과 비슷하게 불필요한 관료주의와 행정적 비효율성이 생산성을 저해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프린스턴대에선 온라인에서 차량 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교직원 주차등록이 끝났는데, 한국에선 차량 리스 계약서, 가족관계 증명서 등을 요구해 등록에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질보다는 양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눈에 띄었다. 그는 “교수의 정년 심사 기준에서 논문이 출간된 학술지의 수준과 관계없이 논문 편수만으로 심사가 진행되는데 올림픽 금메달과 동네 운동회 우승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제도는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 일은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같으면 사실 이렇게 제도가 복잡하면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을 텐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면에선 한국의 잠재력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했다. “제도적 비효율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으니 제도만 개선된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국인 독일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데 대해 쇤헤어 교수는 “예견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강력한 제조업 기반에 안주하면서 4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에 뒤처졌고, 중국과의 경쟁 심화,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의 영향으로 고통스럽게 탈산업화 과정을 겪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과도한 관료주의가 변화와 적응을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독일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독일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쇤헤어 교수는 “제조업이 강한 한국도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전환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규제 개혁을 통해 투자를 저해하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쇤헤어 교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회생 제도에 대해 연구했고,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채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적 네트워크와 정실주의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 볼 생각이다. 그는 “한국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에서 흥미가 있을 만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아직은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2, 3년 뒤엔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깊이 있는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다비드 쇤헤어 교수
△19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 △200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 졸업 △2016년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재무금융학 박사 △2016∼2023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 △2023년∼서울대 경영대학 부교수 △연구논문 ‘엘리트 집단의 지대추구’(2018년), ‘정치적 인맥과 배분 왜곡’(2019년), ‘인맥의 부상: 민간 부문으로 확장된 정치적 보은과 정실인사’(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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