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렇다 할 대응을 못 하고 있다. 3월부터 상법 개정에 착수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정부의 구체적인 단일안도 없는 상태다. 여당 내에서도 일관된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이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민주당이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될 독소 조항을 담은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상법 개정 논의는 연초 윤석열 대통령이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게 계기가 됐다. 정부 부처 간 심도 있는 검토 없이 대통령이 불쑥 던지면서 시작부터 꼬였다.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다가 뒤로 빠졌다. 이러자 권한도 없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총대를 메고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거듭 불을 지폈다. 경제계와 학계의 반발에 부딪히자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는 “여러 안을 놓고 논의 중”이라며 간만 보고 있다.
정부 여당의 입장은 상법을 개정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대안으로 자본시장법을 바꾸겠다는 건지, 어떤 조항을 손보겠다는 건지 불확실하다. 이러는 사이 야당인 민주당이 경영권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회사’로 돼 있는 기업 이사들의 충실의무 대상을 ‘총주주’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투기적 행동주의 펀드 등 외부 공격에 취약해지고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돼 경영 환경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집중투표제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확대 등도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독소 조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할 장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주가를 부양하겠다고 경제 질서의 근간인 상법을 마구 뒤흔드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 문제였다. 일단 무리한 상법 개정 추진을 멈추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면서도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경영권을 불안하게 하고 투자를 위축시키는 방식의 상법 개정은 기업 가치를 훼손해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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