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유치원 줄어드는 중국
1년 만에 中 유치원 1만5000개 증발… 고급 교육 표방한 사립유치원 직격탄
합계출산율 1.00명… 일본보다 낮아
2021년 ‘세 자녀 정책’으로 출산 독려
中 출산 보조금 등 종합대책 발표해도… 청년들 “생계비도 없어 아이 못 낳아”
《15일 오전 중국 베이징시 창핑(昌平)구의 주거단지. 대형 아파트 앞에 세워진 2층짜리 건물은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앞마당에 푸른 인조 잔디가 깔려 있는 이곳은 원래 유명 유치원이 들어섰던 자리다. 해당 유치원은 한 달 등록금이 1만3000위안(약 250만 원)에 이르는 고급 국제(영어) 유치원이었다. 이전엔 등록 대기자가 수십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최근 원생 수가 크게 줄어들더니 급기야 올해 초 문을 닫았다.》
유치원이 폐업한 뒤 1층에는 헬스클럽과 당구장이 생겼지만, 이마저도 손님이 없어 다시 문을 닫았다. 1층 한쪽에 유일하게 영업을 하는 곳은 노인 요양원이다. 1층 안내 데스크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갔더니, 원래 유치원 교실이었던 공간을 개조해 침대와 의료 기기들을 들여놨다. 요양원 관계자는 “유치원이 문을 닫은 뒤 내부 수리를 거쳐 약 3개월 전에 문을 열었다”며 “주거지와 가깝다 보니 노인들이 집 앞에서 사교와 돌봄 등 종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게 이곳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 저출산과 불황에 유치원 ‘줄폐업’
이날 오후 찾아간 차오양(朝陽)구의 한 아파트단지 옆 유치원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문을 닫은 뒤로는 건물 마당 앞 출입문에 자물쇠가 채워진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최근 폐업한 유치원은 대부분 사립으로, 저출산 기조에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실제로 올해 중국 소셜미디어엔 유치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 곤혹스럽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사립 유치원들은 원생이 줄어들자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등록금을 더 올리며 버텨 왔지만, 결국 재정난에 못 이겨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공립 유치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점심시간 전 방문한 창핑구의 공립 유치원 앞마당은 체조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아이들로 가득 찼다. 베이징시 기준 국공립 유치원의 등록금은 한 달에 2000위안(약 38만 원) 안팎으로 사립보다 훨씬 저렴하다. 담장 밖에서 손녀를 지켜보던 한 노인은 “주변 (사립) 유치원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요즘 원생 수가 조금 늘었다”며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매년 신입 원생이 줄어든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유치원 수는 27만4400개. 전년보다 1만4808개 줄었다. 2년 연속 감소세인 데다 2022년(5610개)에 비해 1년 만에 운영을 중단한 유치원 수가 3배 가까이 늘었다. 대표적으로 장시성 잉탄(鹰潭)시와 안후이성 벙부(蚌埠)시는 유치원 수가 1년 새 각각 31.4%, 27.5%나 급감했다. 중국 전역에서 유치원에 입학한 어린이 수 자체가 지난해 기준 4090만 명으로 전년보다 535만 명(11.55%)이나 줄었기 때문이다.
● “1명 낳으라”던 정부도 저출산에 당황
유치원 줄폐업에서 알 수 있듯, 인구 대국인 중국도 이미 저출산 수렁에 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의 총인구는 최근 2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14억 명을 간신히 넘었다. ‘인구 세계 1위’ 타이틀도 인도에 넘겨줘야 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2021년 정점을 찍은 중국 인구는 2035년 13억6000만 명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부 수치를 살펴보면 더 놀랍다. 9월 통계청이 ‘유엔 세계 인구 전망’을 활용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신생아 수)은 지난해 1.00명으로 일본(1.21명)보다도 낮다. 조사 대상인 236개국 가운데 한국(0.72명)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중국은 한국과 비교해 기대 수명이 5.5세 낮다 보니 인구성장률 면에선 오히려 한국(0.07%)보다도 낮은 ―0.23%로 나타났다.
인구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자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을 주도했던 계획생육(가족계획)협회의 역할도 180도 달라졌다. 1980년 설립된 협회는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비영리단체다. 설립 초기엔 급격한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1979년부터 시행된 ‘한 자녀 정책’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협회가 중국 곳곳에 설치한 홍보물에는 ‘혁명을 위해 1명만 낳아라’ ‘민족 부흥을 위해 인구를 통제해야 한다’ 등 다소 섬뜩한 표어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2016년 한 자녀 정책을 폐지했고, 2021년에는 ‘세 자녀 정책’을 발표했다. 협회가 올해 내놓은 홍보 포스터를 보면, 부모가 자녀 3명과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공무원을 동원해 가임기 여성의 집을 방문해 임신·출산 계획을 직접 조사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 “결혼·출산 보조금” 청년 반응은 싸늘
중국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중국 국무원은 출산 장려와 출산 친화적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임신과 출산을 독려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다자녀 가구가 주택을 구매할 때 주어지는 혜택을 강화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또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출산 및 육아 휴가와 같은 법정 의무 휴가를 철저히 보장하고, 회사별로 유연근무나 원격근무 도입을 독려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년 전부터 저출산 문제를 고민해온 한국이나 일본에서 도입해온 대책들을 총망라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중국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 베이징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유모 씨(29)는 몇 년째 남자 친구와의 결혼을 미루다 내년 가을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는 건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 유 씨는 “급여가 낮다 보니 남편과 함께 돈을 벌어도 도시에서 집세 내기조차 힘들다”며 “긴 근무 시간까지 생각하면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중앙정부의 대책 발표에 이어 북부 산시성에서 내놓은 출산 장려책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년부터 35세 이하 여성이 결혼하면 1500위안(약 29만 원)을 지급하고, 첫째 아이를 낳으면 2000위안을 추가로 준다는 내용이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아이까지 낳았는데 겨우 가전제품 하나 살 돈을 준다” “한국에선 회사가 출산장려금으로 55만 위안을 준다더라”라며 장려책을 비웃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런 출산 기피 현상은 최근 중국 청년들의 특성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결혼 출산 적령기인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생)’와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들은 한 자녀 정책 아래 부모와 조부모의 지원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러다 보니 본인들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녀까지 보살필 여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지도부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산아 제한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저출산과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연금 시스템 붕괴 우려 등을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임산부과 소아의 건강관리 서비스 등을 개선하고 육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등 정책적으로 개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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