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매년 소비되는 비닐봉투만 무려 5조 개. 연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약 4억 t. 플라스틱 오염이 야기하는 사회·환경적 피해 규모는 매해 최소 3000억 달러. 해마다 하천과 바다로 유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약 2000만 t. 다음 주 부산에서 개최되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INC-5)가 왜 중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통계를 살피다 보니, 공교롭게도 5에서부터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의 나열이 되었다.
이번 INC-5 회의는 170여 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다자 조약의 성안을 목표로 개최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종 협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쟁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타결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미국의 파리협정 재탈퇴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개최되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상이 우리 외교에 갖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에 대한 국제 규범 제정 작업을 우리가 주도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플라스틱은 항공기 경량화용 소재에서부터 농지를 덮는 비닐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땅 사이 어느 공간에서도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이렇게 널리 쓰이는 물질에 대한 국제 규범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놀랍지 않은가.
부산 플라스틱 협상은 인류의 삶을 파괴할지도 모를 지구적 문제에 대해 실천 가능한 새로운 국제 규범을 만들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지정학적 격변기에도 환경 오염과 같은 초국경적 문제 해결에는 국가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가 이성이 작동하고 있는 현장인 만큼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일부 다자 협력 이완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국의 환경 규제의 태동을 놓쳐서도 안 된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했고,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도 각각 청정경쟁법안(Clean Competition Act)과 해외오염세법안(Foreign Pollution Fee Act)을 발의해 탄소집약도가 높은 수입품에 대한 과세를 검토 중이다.
앞으로도 각국은 환경 보호와 자국 산업 보호 간 회색지대에 적용될 여러 법안을 만들고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제 규범의 파편화보다 단일 국제 규범 형성이 전략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부산에서 유엔 플라스틱 협약의 탄생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선진적인 폐기물 처리 제도를 바탕으로 협상에 유연하게 대처해 올 수 있었다. 그 점이 우리나라가 INC-5 회의를 유치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필자가 9월 유엔총회 계기에 참석한 플라스틱 오염 관련 여러 행사에서도 우리나라의 역할에 대해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높은 기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모두에 언급한 5 아래 숫자 중 마지막으로 채워야 할 숫자는 1이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 후손들에게 오염된 세상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야말로 이번 플라스틱 국제 협약 협상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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