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면 도순검사 강조가 고려의 킹메이커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 천추태후가 병약한 아들 목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는 정부(情夫)인 김치양과 고려를 말아먹는 중이었다. 목종은 궁여지책으로 절에 피신해 있던 왕순을 불러 왕위를 물려주기로 하고 강조를 불러 자신의 호위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개경으로 가던 강조는 목종이 이미 승하한 뒤라는 잘못된 첩보를 받았고, 이에 군대를 동원해 천추태후를 몰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로 목종은 여전히 건재했다. 강조는 왕명도 없이 군대를 끌고 온 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반역자가 될 생각도 없었다. 그는 목종을 폐위시키고 왕순을 모셔 와 제8대 왕 현종으로 즉위시켰다. 목종은 그날로 유배되었다. 강조는 후환을 남겨둘 수 없었다. 부하를 시켜 목종을 시해하고 말았다.
다음 해 봄, 북방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등주(함경남도 안변)에 여진족이 침입하여 30여 부락을 불태웠다. 이에 고려 장수가 여진 사람 95명이 내조하였을 때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참사를 일으켰다. 분개한 여진은 거란에 복수를 청했다. 거란은 마침 잘됐다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침략의 핑계는 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대역죄를 벌하겠다는 것이었다. 당 태종이 연개소문의 영류왕 시해를 침략의 핑계로 댄 것과 마찬가지였다.
강조는 도통사가 되어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방을 방비하였다. 거란의 성종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넜다. 강조는 군사를 셋으로 나누고 중앙에 칼날을 꽂은 수레인 검차를 배치하여 거란의 기병을 상대했다. 검차가 펼친 진에 거란 기병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몇 번이나 공격을 받았지만 고려군은 훌륭히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강조는 이에 기고만장한 생각이 들어 ‘탄기’를 놀았다. 탄기는 당송 시대에 유행한 놀이로 바둑과는 다른 놀이다. 이것은 중앙부가 불룩한 네모난 판 위에서 네모난 말을 가지고 하는 놀이다. 전해지기로는 한나라 성제(재위 기원전 32∼기원전 7년)가 축국을 너무 좋아하자 신하가 축국 대신 방에서 놀거리로 만든 것이라 한다.
강조가 노는 사이에 거란군은 검차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내 돌파에 성공했다. 거란군이 검차를 우회하여 진을 파훼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한 강조에게 귀신이 된 목종이 나타났다고 한다. 살해당한 목종이 “네 놈은 끝났다. 천벌이 너를 멀리하겠는가!”라고 하자 강조는 투구를 벗고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다 빌었다고 전해진다. 전군의 총수가 이러고 있으니 고려군이 전황을 뒤집을 리 만무했다. 강조도 포로로 잡혔다. 거란 성종은 강조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라고 말했는데, 강조는 “고려의 신하가 어찌 네 신하가 되겠는가?”라고 대꾸하며 고려에 대한 충심을 끝까지 지켰다. 포로가 된 다른 장수가 얼른 신하가 되겠다고 하자 강조는 그를 발로 차며 꾸짖기도 했다.
정보를 잘못 읽고 군주를 시해했으며, 군사 정보 파악에 실패해서 나라의 큰 위기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래도 끝까지 나라에 대한 충성은 잊지 않았던 문제적 인물이 강조다. 그의 오판은 모두 정보를 잘못 파악한 데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미-중-러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정보 분석은 정말 중요하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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