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규정한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1981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66.1세였다. 20대 초에 결혼했다 해도 그 시절 부모가 타계할 때 자녀들의 나이는 40대 중반을 넘지 않았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826달러. 대대로 재산을 물려받은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하면 자녀에게 물려줄 만한 재산이 있는 집도 거의 없었다.
▷지난해 상속세가 부과된 피상속인(사망자) 중 80세 이상인 경우는 1만712건으로 전체 상속 건수의 53.7%였다. 이들이 물려준 재산은 20조32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20조 원이 넘었다. 사망자 연령을 고려할 때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들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중반이 넘을 것이다. 한국인 남성과 여성의 올해 평균 기대수명은 각각 86.3세와 90.7세. ‘노노(老老) 상속’은 이미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문제는 노인이 돼버린 자녀가 물려받은 재산은 좀처럼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녀 양육 및 교육, 주택 구입 등 제일 돈이 많이 드는 시기가 지나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같은 일을 겪은 일본이 2년 전부터 ‘부(富)의 회춘’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다. 일본은 피상속인 중 80세 이상 비중이 70%가 넘고, 상속인의 52%는 60세 이상이다.
▷생전에 일찌감치 재산을 물려주도록 유도하는 게 일본 정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부모 사망일 7년 이전에 자녀에게 연간 110만 엔(약 985만 원)까지 물려준 재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 준다. 60세 이상 조부모가 18세 이상 손자녀에게 준 교육비는 1500만 엔까지, 결혼·육아비는 1000만 엔까지 세금 면제다. 한 세대를 건너뛰어 젊은이들에게 노인층의 돈이 신속히 전달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높은 세율은 부의 이전을 어렵게 한다.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50%는 일본(55%)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수입이 적은 청년층은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상속받을 경우 내야 할 수억 원의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고령층이 남긴 재산 중 절반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 등 건물이어서 상속 절차가 복잡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조만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에선 소비 침체가 만성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가구 순자산의 44%를 쥐고 있는 60세 이상 가구주의 지갑은 닫혀 있고, 소비 성향이 강한 청년과 돈 나갈 데 많은 30, 40대는 쓸 돈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만 가능하다면 부의 세대 간 이전이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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