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8개월 된 영아가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손가락 2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으나 병원 15곳이 수용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고가 발생한 16일 119구급대가 대형병원 5곳을 포함해 접합 수술을 하는 수도권 병원 대부분에 전화를 돌렸지만 ‘환자가 너무 어리다’ ‘진료를 볼 의사가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아이는 구급대와 부모가 필사적으로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난은 만성화된 문제지만 소아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특히 찾기 어렵다. 의료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쳐 환자를 볼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인 데다 신생아 수가 감소하면서 의사로서 미래도 불투명해진 탓이다. 자녀의 치료 결과가 나쁘면 부모들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데 환자의 기대여명이 길어 배상액도 거액이 나온다. 지난해엔 소아외과의가 아닌 한 당직 외과의가 소아 환자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판단에 응급수술을 했다가 장애가 생기자 병원과 함께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올 2월부터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줄줄이 내놨지만 대개 발표에 그칠 뿐이어서 9개월이 지나도록 의료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의사의 소송 부담 완화 대책도 환자단체의 반대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후로는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던 전공의들마저 집단 사직하면서 중환자 치료가 지연되고 ‘응급실 뺑뺑이’는 더욱 심각해졌다.
내년엔 신규 전문의 배출이 급감해 필수의료 대란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도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자는 올해의 20% 수준인 566명에 불과해 소아청소년과 같은 필수의료 분야는 세부 전공별로 대가 끊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데도 의정 갈등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대 수시 합격자 발표가 3주 남았는데 전공의들은 ‘올해 의대 모집 중지’를 고수하고 있고, ‘성탄절 전에 선물같이 합의를 이뤄내겠다’던 여야의정 협의체는 성탄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나 반쪽 협의체에 그친 채 공회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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