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전두환도 불러 수첩 펴놓고 질문
野는 반대 집단… 소통 ‘쇼’라도 해야
대통령은 전광판을 자세히, 자주 봐야
정치 실종… 대통령에게 제일 큰 책임
국정 낙제점… 개헌으로 정치 개혁을
《‘대통령 권력 줄이기’ 개헌 강조하는 정대철 헌정회장
정대철 헌정회장은 영원한 ‘민주당 사람’이다. 민주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을 뿐 아니라 부친 정일형 박사와 아들 정호준 전 의원을 포함해 3대가 도합 14번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당에 깊이 뿌리내렸다. 정 회장은 그럼에도 민주당 울타리를 넘어 여야 정치인들과 두루 격의 없는 소통을 이어 온 ‘광폭 정치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도 20년 넘게 친분을 쌓았다. 23일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정 회장은 윤 대통령을 “정의로운 검사였다”라고 기억했고 동시에 “준비 부족으로 국정이 낙제점”이라고 비판했다. 비주류가 말살된 민주당에도 쓴소리를 했다. 정 회장은 혼란스러운 요즘 정치를 바라보며 정치 개혁을 위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개헌을 여생의 과제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헌정회가 27일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를 여는 것도 이런 이유다.》
―윤 대통령과의 친분은….
“오래전 검사라면서 전화를 걸어와 가슴이 철렁했다. 만났더니 ‘제가 검찰의 정대철입니다’라고 하더라. 주변과 소통하는 걸 즐기고, 얼굴도 커서 그렇게 불린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서울대 법대 17, 18년쯤 후배인데….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즈음부터 더 자주 만났다. 그 특검보 윤석열이 몇 년 뒤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 둘이 만난 건 100번인지 200번인지 생각도 안 난다. 당선 후에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과 식사를 한번 했다.”
―검사 윤석열은 어땠나.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걸 말투에서 느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이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 만남이 끝날 무렵 차를 갖고 남편을 데리러 오곤 했던 김건희 여사도 알게 됐다.”
―윤 대통령에게 정치 입문을 권했다는 것이 맞나.
“내가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에 잠시 가 있었던 때가 있다. 그때 부장검사였던 대통령을 안 의원에게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다. 처음엔 뜻이 있는 것 같다가 공천 때가 되니까 거절했다. ‘정치를 하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좌천된 일 등) 내가 한 일이 정치하려고 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안 대표가 직접 들어보겠다고 해서 셋이서 만났다. 그때만 해도 윤 검사가 안 대표에게 90도 인사할 정도로 깍듯했다. 안 대표는 10번, 20번 설득하다가 포기했다. 그로부터 6년 뒤 두 사람이 대선 때 단일화해 윤 검사가 대통령이 됐다. 정말 세상일은 모르겠더라.”
―검사 시절의 정의감이 국정에선 덜 느껴진다.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대통령은 국정에 성공하지 못했다. 정치와 친하지 못하고, 준비 부족 탓이겠지만 국정 철학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검찰 출신으로 민주적 대화, 타협, 조정에 익숙지 않았을 것이다. 또 부인 문제까지 생겼다. 최근 기자회견을 봤는데 변명만 했다. 국민적 요구가 뭔지 알고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대통령이 되면 왜 이렇게 달라지나.
“(인사 예산 등) 다른 권한보다 대통령을 가장 자신만만하게 만드는 것은 정보라고 본다. 자신이 세상일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오만해진다.”
―윤 대통령은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었다. 뭘 했어야 했나.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딱 한 번 만났다. 내가 내부 사정을 들어보니까, 대통령은 사법 리스크가 끝난 뒤 만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무죄 추정이 필요한데, 검사 출신 대통령이 비법률적인 사고를 한다. 야당 대표를 안 만나겠다면 야당 중진이나 상임위원장을 초청해 밥을 먹어야 한다. 취임 2년 반 동안 이런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고 들었다.”
―대통령은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나.
“정치 현실에 와 보니까 정치인들이 나쁘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다.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존재로 야당을 봤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당은 반대하는 집단이다. 설득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대통령에게 필요한데, 그거 없어 걱정이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을 불순 세력으로 보고, 야당은 보수 정당을 시대착오적 퇴행 집단으로 본다. 야당은 툭하면 법안 강행 처리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법률안 24건에 썼다. 이렇게 여야가 자기 힘을 과시하는 정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 책임제에선 대통령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가장 먼저, 또 크게 느껴야 한다. 내가 알던 윤 대통령은 취임하고 보니까 정치 친화적이지 못했다.”
―정치 친화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내가 문재인 대통령 시절 우연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DJ)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뒤 자신을 초청한 뒤 국정 경험을 듣겠다고 수첩을 펼쳐놓고 질문하더란다. 그렇게 5번을 초청했다고 했다. 전두환의 조언을 DJ가 따랐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DJ는 정적의 딸이었던 박근혜 의원도 초청했고,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이런 걸 두고 쇼라고 해도 좋다. 또 쇼 한두 번으로 국민들은 감동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지켜보는 국민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지금 대통령은 자신이 옳고, 이재명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겠지. 설혹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지금의 여야의 만남이 절박하다면 자기 생각을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 꽉 막힌 정국을 풀려면….
“지금 정국을 돌파하려면 연립정권 비슷한 방식 아니면 어렵다. 국무총리 추천은 야당에 맡길 각오를 해야 한다. 언론에서 거론되는 김한길 박주선 등 민주당을 떠난 분들이 국회 표결을 통과하겠나. 기자회견 때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전광판을 자세히, 그리고 자주 봐야 한다.”
―김 여사 해법은 뭔가.
“대통령이 읍참마속 심정으로 특검을 받아야 한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 구속을 좋아서 했겠나. 국민이 원한다면 해야 하는 게 정치다. 민주당도 특검 선정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걸 양보해야 한다. 특검이 여야 상황 다 참고해서 수사할 텐데. 그 정도 양보는 해야 한다.”
―헌정회장으로서 개헌 토론회를 연다는데 무엇을 고쳐야 하나.
“대통령은 제왕적이다.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거 빼곤 다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나.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가 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든, 재임 중 중간평가 같은 선거를 더 치르게 하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하든 대통령 권한 분산이 필요하다. 나는 내각제를 더 선호하지만, 민심이 내각제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국회에 내각 불신임 권한을 주고, 대통령에게는 국회 해산권을 줘 상호 견제하는 걸 생각할 수는 있다.”
―대통령 권한 축소도 중요하지만 국회에 대한 불신도 크다.
“국회의원도 통제받아야 한다. 의원 국민소환제를 헌법에 넣을 수 있다. 지방자치에 있는 주민소환제도와 비슷한 것이다. 막 나가는 의원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국회의 윤리심사 기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자문단도 설치해서 윤리심사 때 의원단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그나마 있던 상설 윤리위원회도 없앴다. 자기들끼리 불편한 걸 없애버리며 퇴행했다.”
―개헌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자가 반대한다.
“1987년 개헌 이후 37년이 흘렀다. 그사이에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기후변화, 지방소멸, 남북관계 변화 등 개헌 필요성이 많아졌다. 개헌해야 할 절박성이 있다. 가장 시급한 사유는 제왕적 대통령 문제다. 그래서 개헌의 때가 왔다는 공감대가 생겼고, 국회의원 사이에 소명의식이 느껴진다. 가장 큰 정치 개혁은 개헌이구나 하는 소명 말이다.”
―1987년 개헌은 민주화 열기가 응축된 결과였다. 개헌 요소가 많으면 어렵지 않을까.
“개헌은 중요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줄줄이 다 고치려면 백년하세월이다. 권력구조 개편과 지방분권 등 2가지가 핵심인데, 가능한 부분, 합의된 부분만이라도 해야 한다. 절박한 정치 개혁을 위해선 개헌이 돌파구라고 우리 헌정회는 생각한다.” -임기 단축 개헌 주장도 나오는데….
“윤 대통령이 이렇게 임기를 마치면 낙제점이다. 정치 개혁 과제인 개헌을 대통령이 만들어 내면 된다. 다만, 지금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것은 논란이 크다. 여당은 탄핵의 변형이자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개헌을 하더라도 임기 단축은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하면 된다. 여소야대를 막기 위해 대선과 총선을 비슷한 때 치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여야 싸움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나.
“여야 싸움을 줄이려면 국회법이라도 고치는 건 어떨까. 싫더라도 만나서 대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여야 상설 정책협의체를 만들어 1년에 몇 번 이상은 협의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을 넣자는 학자들도 있다. 영국 독일 미국처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지정석이 아니라 입장하는 순서대로 섞어 앉으면 어떨까.” ―170석 민주당은 제 역할을 하고 있나.
“이재명 대표는 달라져야 한다. 사법 리스크와 당을 너무 묶어 놓았다. 이 대표가 내 문제는 따로 해결할 테니 민주당은 해방되라고 선언해야 한다. DJ였다면 벌써 대표직 던졌을 거다. 그러면 당도 더 고마워하고, 본인도 더 빛나게 된다. 1955년 민주당 창당 이래 비주류가 없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내가 민주당 대표 할 때도 비주류를 위해 3, 4할은 남겨놓았다. 지금은 국회의원도 올바른 얘기를 못 하게 됐다. 이재명의 결단, 의원과 당원의 결단이 동시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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