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 삼국시대 때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강북을 평정하고 오(吳)나라 손권(孫權)은 강동에서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촉(蜀)나라 유비(劉備)는 확실한 근거지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유비에게는 관우나 장비 같은 용맹스러운 장수는 있었지만 지략을 갖춘 책사(策士)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서서(徐庶)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추천했습니다. 유비는 세 번을 찾아가 겨우 제갈공명을 만날 수 있었지요.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여 근거지로 삼으라”고 권합니다. 또 “서쪽은 융(戎)과 화친하고, 남쪽은 이월(夷越)을 어루만지며, 밖으로는 손권과 우호를 맺고, 안으로는 정치를 바르게 해 부국강병의 내실을 다진다면 패업(霸業)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한실(漢室)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품고 있던 계책을 말했습니다. 삼고초려한 후 유비는 제갈공명을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군신(君臣) 간 정이 날로 두터워졌지요. 그러자 관우와 장비는 젊은 제갈공명이 의형제를 맺은 자신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자신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이에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달래며 말하기를 “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으니(孤之有孔明猶魚之有水) 불만이 없길 바란다”라고 한 것에서 ‘수어지교’가 유래했습니다.
● 생각거리: 이 고사에서 유래된 성어로는 임금과 신하의 친밀함을 뜻하는 ‘어수지친(魚水之親)’, 어진 임금과 신하가 서로 이해하고 돕는 즐거움을 의미하는 ‘어수지락(魚水之樂)’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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