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라고 휴대전화 욕심이 없을 리 없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개인 폰을 휴대한 버락 오바마는 블랙베리 마니아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아이폰 3대를 썼는데 이 중 하나는 보안 칩을 넣지 않은 개인용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약 100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개인 폰을 휴대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개인 폰으로 여친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KGB 출신으로 보안 의식이 철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대전화를 멀리한 거의 유일한 예외다.
▷윤석열 대통령도 도감청 방지 기능이 있는 보안폰과 별도로 검사 시절 쓰던 개인 휴대전화를 계속 이용해 왔는데 최근 김건희 여사와 함께 기존에 쓰던 개인 휴대전화와 번호를 교체했다고 한다. 김 여사가 명태균 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제가 명 선생님께 완전 의지하는 상황”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요” 등이 공개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가 개인 폰으로 외부와 소통하며 국정에 개입해 왔다는 의혹에 대해 “저도, 제 처도 휴대폰을 바꿨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개인 폰을 쓰면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개인 폰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3차례 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때도 수사 외압과는 별개로 보안 문제가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폰은 중국에, 메르켈 총리 폰은 미국에 도청당한 전례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블랙베리는 전화를 걸 수도 문자를 보낼 수도 없고, 그저 걸려 오는 전화를 받고 극소수 사람들이 보내는 이메일만 수신할 수 있는 ‘세 살짜리 애들이 갖고 노는 수준’이었다.
▷개인 휴대전화를 교체한 정도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번호를 바꿔도 기존 연락처는 다 남아 있다. 새 휴대전화로 계속 문자 주고받고 통화하면 바꾸나 마나 아닌가. 개인 휴대전화가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행정관의 차명폰으로 40년 지기 최순실 씨와 570여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부부의 개인 휴대전화 교체는 국정 쇄신을 약속한 후 처음 나온 가시적 조치다. “인재 풀 물색과 검증에 들어갔다”던 인적 쇄신은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사 라인’은 건재하고,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개인 폰 교체에 대해 “유일한 국정 쇄신” “증거 인멸”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