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게 살았다고 알려주는 모든 교집합에는 ‘집’이 있어
집은 삶의 의미를 보관하는 곳
우연한 ‘幸福’ 아닌 능동적 ‘行福’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터가 집
《행복과 집의 상관관계
집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만 지어진 집은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끼쳐 우리가 사는 모습을 만든다. 수천 년간 문명은 수십억 년 떨어진 우주의 모습을 관찰할 만큼 발전했지만 인간은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근대 이후 집은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과거에 비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할까?》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심리 치료가 아니라 행복 증진을 위해 긍정심리학을 연구했다. 그는 행복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첫 번째 ‘즐거움’이다. 맛있는 걸 먹는 순간은 너무나 즐겁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맛있는 경험을 찾게 된다. 본능적인 즐거움은 행복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지만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즐거움을 위해서는 계속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과하면 음식은 나의 행복을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음식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주체인 나를 잃어버리고 즐거움은 공허함으로 변한다. 사실 여러 감정 상태 중 하나인 ‘즐거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감정은 사람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무서운 감정은 우리를 조심하게 만들고 즐거움은 어떤 행위를 반복하게 해준다. 인간은 여러 감정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고 즐거움이 아닌 모든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삶에 부정적이다.
익숙함은 즐거움을 줄어들게 만든다. 좋아하는 음식도 매일 먹는다면 결국 질리게 된다. 인간의 뇌는 익숙함이라는 방식으로 뇌의 에너지를 절약해서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행을 가서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며칠 머물다가 집에 오는 순간 아! 라는 감탄과 함께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다시 집은 익숙하고 편안한 집이 아니라 그냥 사는 집이 된다. 따라서 집은 즐거움과 익숙함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집은 기본적으로 잠을 자고, 씻고, 먹고, 배설하는 등 몸의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곳이다. 추상적인 행복보다 쾌적한 온습도, 보송보송 마른 수건, 환기가 잘되는 집 등 생리적 즐거움은 행복한 집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이다.
셀리그먼이 이야기하는 두 번째 행복의 조건은 ‘몰입’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는 표현은 대상에 집중해 내 존재를 잠시 잊는 상태다. 몰입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대상에 대한 공감과 배경을 이해하면 깊게 몰입할 수 있다. 영화를 볼 때도 처음에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스토리와 주변 관계를 이해하고 감정 이입을 한 후에는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몰입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집안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놀 때도 몰입할 수 있으며 이런 일상생활의 몰입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일상에서의 몰입은 매우 중요하다. 주말에 집 청소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구석구석 소파 밑과 가구 위 먼지를 쓸고 빨래한 옷도 개고 이불도 말리고 이런 행위들 속에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었나 생각도 들고 이 옷은 언제 입었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정신없이 청소하는 중에 나까지 돌아보면 어느샌가 반나절이 지난다. 이것이 몰입이다. 일상생활은 반복적이기에 그만큼 더 자주,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마지막 조건은 ‘삶의 의미’다. 승진하는 것, 유명해지는 것, 가족을 위해 사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등 각자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의 조건은 다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수많은 의미는 사라지고 결국 가족과의 시간, 즐거운 기억 등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죽으면서 통장 잔액이 이것뿐이라며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살아생전 꼭 이루고 싶은 목록인 버킷리스트가 의미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이고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다. 가치 있게 살았다고 알려주는 모든 것의 모든 교집합에는 언제나 집이 있다. 결국 집은 ‘삶의 의미’를 보관하는 저장고다.
지속적이고 완벽한 행복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고 행복만을 위한 일방적인 노력은 행복을 더욱 숨겨 찾을 수 없게 만든다. 행복은 ‘우연한’이라는 의미의 행(幸)과 ‘복’을 의미하는 복(福)이 결합한 단어다. 복권은 내가 구매하는 것 이외에 어떤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이런 불확실성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너무나 수동적이다. 그래서 ‘행하다’ 의미를 지진 행(行)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만일 행복이 ‘행하다’는 의미의 ‘행’과 복을 의미하는 ‘복’의 결합이라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행하는 것’이 된다. 결과가 아니라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이다. 즐거움과 몰입, 의미 있는 삶의 기반은 집이고 집에서 잘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행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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