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이사로 깨달은 것들[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일 22시 54분


나는 지은 지 오래되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산다. 몇 년 전 그 집을 고쳐 살기로 했다. 집수리 경험이 없어 생각보다 시간과 품을 많이 썼다. 고치고 치우며 겨우 살던 어느 날 짐 보관 창고 업체에서 문을 닫는다는 연락이 왔다. 사과의 의미로 이달 안에 창고를 다 빼면 일부 월세를 돌려준다고 했다. 창고비도 부담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모든 일정을 창고 정리로 맞췄다. 짐은 내가 직접 뺐다. 2주 내내 짐을 들고 5층 계단을 올랐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하나, 엘리베이터는 아주 소중하다. 당연하지 않냐고? 가장 큰 택배 상자 30여 개를 5층까지 내내 들고 다니면 엘리베이터의 소중함이 척추 속까지 사무친다. 종종 다른 일이 있어 번화가에 나가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우주선을 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수직 이동이 가능해진 건 인류의 쾌거이자 이동의 혁명이다. 실제로 도시 용적률을 높인 고층 빌딩의 결정적 기술이 엘리베이터다. 산소나 안보처럼 엘리베이터의 소중함 역시 그것이 없어야 깨닫는 것이었다.

둘, 책은 무겁다. 이번에 세어 보니 나는 1000권 좀 넘는 책을 갖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읽고 쓰며 정보를 생산하는 게 직업이니 당연히 책과 가까웠다. 내가 책을 아무리 사랑해도 책을 옮기는 건 다른 문제였다. 책 수십 권을 묶은 뭉치를 수십 개 옮기다 보니 책 뭉치는 돌덩이나 다름없었다. 이삿짐 업체에서 책 많은 집을 꺼린다는 말도 완전히 이해했다. 앞으로 나올 내 다음 책들은 무조건 가볍게 만들리라, 5층까지 책 뭉치를 올리며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몇 년 만에 내 물건과 다시 만나자 기분이 이상했다. 그때 내가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반대로 살 때의 고민과 상황이 바로 떠오르는 물건도 많았다. 뭐가 됐든 지난 3년간 그 물건들 없이도 사는 데 지장 없었다. 그 사실이 충격이었다. 뭐든 없어도 잘 산다면 나는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버려야 하나. 짐을 치우는 내내 생각했다. 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고민 자체가 상당히 의미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이사 내내 자책했다. 형편 맞춰 간편하게 신축 집에 살면 되는데 왜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나. 오늘 드디어 창고를 다 비웠다. 텅 빈 창고 앞에 서서, 수많은 짐 상자를 올렸다 풀고 1000여 권의 책에 쌓인 먼지를 일일이 닦아주고 꽂아주며 뭔가 배웠음을 알았다.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를 가지려면 무슨 노력을 하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집수리와 이사 과정에서 내렸던 수많은 판단이 나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비효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난 2주 내내 계단을 오르내린 결과 의외의 효과가 생겼다. 다이어트다. 운동량이 많은지 새벽에 라면을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이사가 끝나도 살이 다시 붙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무실 이사가 남았다. 거기도 오래되어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꼭대기 층이다. 그곳은 또 내게 얼마나 큰 깨달음을 줄까.
#엘리베이터#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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