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세요.” 9월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던 12세 소녀 샬럿 오브라이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부모는 딸의 방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집단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던 샬럿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샬럿의 아버지는 “너무 잔인해서 전할 수 없는 최악의 말들”이 담긴 SNS 메시지를 읽은 날 밤 딸이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이 사건은 청소년 SNS 사용에 대한 호주 사회의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호주 상원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부모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내년 말 시행되는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스냅챗, 틱톡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이들 업체가 청소년의 이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5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이 너무 광범위하다”(틱톡) 등 업체들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SNS는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 매일 3시간 이상 SNS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우울증과 불안을 겪을 확률이 2배 높다는 미 보건당국의 보고서도 있다. 이에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는 15세 미만은 부모의 동의 없이 SNS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했고, 미국 플로리다주는 내년부터 14세 미만은 SNS 계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노르웨이, 영국 등도 청소년의 SNS 사용을 일부 제한 중이다.
▷한국에서도 SNS에 빠진 아이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4년 새 SNS에 자살 유발 정보가 올라왔다는 신고가 9배 이상 늘었고, 이는 아동·청소년 자살률 증가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SNS가 다른 불법 행위로 이어지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SNS에 올라온 광고에 혹해서 온라인 도박에 빠지거나 마약을 구매하는 식이다. 딥페이크 범죄는 피의자의 70% 이상이 청소년인데, 대부분 SNS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퍼뜨리다가 적발됐다. 그럼에도 SNS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적극적인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호주가 만든 법의 실효성에 대해선 반론이 만만치 않다. 자녀가 부모 이름으로 SNS에 가입하는 등 편법을 쓸 수 있고, 폐해가 더 심각한 다크웹으로 옮겨가는 청소년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교육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유튜브 등이 규제에서 빠진 것도 한계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 법이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게 옳다는 것은 안다”고 했다. 시행착오를 무릅쓰고서라도 시작하겠다는 얘기다. 우리도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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