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내년, 내후년 1%대 성장 충격 전망
대형 외부 충격 없는 2% 미만 성장은
경제개발 이후, 현정부에서만 3차례 될듯
배임죄 폐지 등 기업규제 개선 서둘러야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반환점을 전후해 정부·여당에서는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성 홍보 자료나 발언이 적지 않게 쏟아졌다. 압권은 국민의힘 김민전 최고위원이 한 라디오쇼에 나와서 한 발언이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90점 이상 점수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업적을 냈다. 현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지금 취업률이 70%에 육박하고 있다. … 세계적인 경제 평가기관들이 한국 경제를 슈퍼스타라고 할 정도로 실적이 굉장히 좋다.”
‘자화자찬 릴레이’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주, 한국은행은 내년과 내후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전망치로 1.9%와 1.8%라는 충격적 수치를 내놨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한 것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54년 이후 6번뿐이었다. 원조 물자를 빼면 경제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1956년, 오일쇼크와 함께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은 1980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에 전염돼 국가 전체가 부도 상태에 빠진 1998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부실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전대미문의 글로벌 팬데믹과 맞닥뜨린 2020년, 그리고 작년이다.
한은의 전망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개발 궤도에 오른 이후 ‘블록버스터급’ 외부 충격 없이 내재적 요인으로 2% 미만 성장을 하는 것은 2023년에 더해 2025년과 2026년 이렇게 3차례가 된다. 모두 윤 대통령 임기 중이다.
물론 모든 것을 현 정부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경제의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잠재성장률의 추락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2년 3.8%를 기록한 이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락에 하락을 거듭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각각 2.025%와 2.004%로,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15배나 큰 미국에 2년 연속 역전당했다. 비유하자면 조그만 스포츠카가 짐을 잔뜩 싣는 대형 덤프트럭보다 최적 주행 속도가 낮게 설정돼서, 출고된 셈이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1%대가 된다는 것은 가뜩이나 낮게 설정된 최적 주행 속도만큼도 달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저성장의 늪’에서 우리 경제가 허우적대지 않게 하려면, 조금 늦은 감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경제 운용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먼저 ‘착시’를 걷어내야 한다. 고용률이 대표적인 예다. 평생직장을 원하는 청년들은 취업이 어렵고, 노년층은 부실한 연금 때문에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한국에서 저출생-고령화의 진행과 함께 고용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기 임시직만 잔뜩 늘어나는, 일자리 질의 저하의 슬픈 단면이다. 이걸 놓고 ‘역대 최대 고용률’이란 미몽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임기 초반 잠시 시늉만 내다 내팽개쳐버린 기업 규제 완화에도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 정부는 불합리한 경제 형벌 규정 186건의 ‘개선 추진’을 대표적 규제개혁 성과 중 하나로 꼽는데 “삼라만상이 처벌 대상”인 배임죄를 손보거나 폐지하지 않는 한 무의미한 ‘숫자 채우기’일 뿐이다. 명백한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 배임을 민사 분쟁의 대상이 아닌 형사 처벌 대상으로 삼는 선진국도 드물거니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까지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 강행을 추진하면서 기업 경영의 최대 불안 요인 중 하나가 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이 나서서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한다. 최근 금융위원장 등이 나서서 상법 개정에 대한 반대의견을 밝히기는 했지만, 윤 대통령이 올해 초 직접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말빚’을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기업 할 의욕’을 꺾는 불확실성이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다.
현 정부는 2022년 말 ‘5년 후 10위 이내 경제대국’이란 청사진을 내건 바 있다. 하지만 그해 13위였던 한국의 경제 규모 순위는 1년 뒤인 지난해 14위로 한 계단 더 미끄러졌다. 한은이 예고한 ‘1%대 성장률’이 현실화하면 ‘10위 이내 진입’은 고사하고 14위에서도 영영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런 추세가 더 이어지면 한국 경제가 20위 밖으로 밀려나는 것도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아니다.
‘슈퍼스타의 추락이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됐다’는 흑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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