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국가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꼽히면서 세계 각국이 반도체 전쟁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는 총수출의 약 20%를 차지한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자 국가 제1의 산업이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 전략을 수립해 전문인력 양성과 핵심기술 개발, 반도체 제조 지원 확대 등 성장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최근 발의된 반도체 특별법안은 관련 산업 육성을 통해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글로벌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이는 정부가 국가첨단전략산업의 핵심으로 반도체를 지정하며 경기 용인·평택과 경북 구미를 특화단지로 선정한 결정과 맥을 같이한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특별법안이 제안하는 내용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반도체 특화단지로 용인·평택, 구미가 지정된 것은 용인·평택은 칩 생산 등 전방산업의 중심지로, 구미는 소재·부품 등 후방산업의 거점으로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수도권의 공장 규제를 묶는 성장관리권역을 해제하고 도로와 용수, 전력 지원 인프라 혜택을 칩 생산 지역인 수도권에만 집중하는 방향이다.
반도체 완성품 산업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는 것과 달리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은 자립화율 50%로 여전히 취약하다. 소재·부품 공급망의 안정성과 자립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전방산업 경쟁력 역시 장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소재·부품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용수, 전력 등 인프라 조성 등에 약 10조 원이 투입되는 반면, 비수도권 지역인 구미에는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수도권 중심의 지원은 반도체 초격차 달성과 소재·부품 국산화라는 국가적 과제에 역행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전략산업 육성이라는 목적을 내세워 수도권 규제를 풀어서 공장을 집중시키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방 청년들을 또다시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심화시켜 비수도권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러한 법안은 재고해야 한다.
비수도권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이미 산업 용지를 갖췄고, 용수가 풍부하며 인근 지역에서 양질의 전력 공급이 가능해 곧바로 생산 공장을 설립할 수 있다. 수도권 규제를 풀고 수십조 원 예산을 들여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은 배부른 사람에게 밥을 더 먹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여건이 갖춰진 비수도권에 반도체 및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내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별법안에 반도체 인재가 지방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할 정주 여건 개선과 지방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을 포함시켜야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장점을 살리는 역할 분담으로 반도체 산업 발전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대만의 TSMC가 어떻게 견고한 글로벌 1위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부와 입법부는 이번 반도체 특별법안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전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지방을 고사시키는 수단까지 정당해질 수는 없다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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