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대한민국 정치판엔 온통 사랑꾼 남편들만 있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각자 자기 아내 감싸기에 혈안이고, 한동훈 대표도 아내 등 가족이 연루된 것 아니냐는 ‘당원게시판’ 논란에 한 달 가까이 휘둘리고 있다. 평소 참 말이 많고 반응도 빠른 그답지 않은 모습에 “아내 지킴이가 한 명 늘었냐”는 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1월 7일 대국민담화에서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아내 사랑을 쏟아냈다. 김건희 여사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해 묻자 “(국정농단에 대한) 국어사전을 새로 정리해야 한다”, “제 처를 많이 좀 악마화시킨 건 있다”, “(아내가) 어떤 면에서 순진한 면도 있다”고 했다. 귀를 의심하게 하는 답이었다. 야당은 김 여사에 대한 수사 대상으로 주가조작 의혹부터 디올백 수수, 인사 개입, 선거 개입, 채 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대통령 집무실 관저 이전 의혹 등 무려 13건을 꼽고 있다. 의혹의 가짓수와 종류만 봐도 “순진하다”고 감쌀 상황은 아닌 듯하다.
이에 질세라 이재명 대표도 11월 14일 아내 김혜경 씨를 향한 구구절절한 러브레터를 띄웠다. 김 씨는 이날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 부인 3명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10만4000원어치 밥을 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김 씨에게 150만 원 벌금형을 내리면서 “선거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었다”고 했다. 액수를 떠나 행위의 의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김 씨가 사전에 알았든 몰랐든, 밥값이 얼마였든, 경기도 법카를 부적절하게 쓴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유감 표명은커녕 자신의 페이스북에 보란듯이 “아내는 희생제물”이라며 “혜경아,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고 썼다. 아내를 향한 애절한 마음은 집에서 말로 했어도 됐다. 그 전에 최소한 경기도민에 대한 사과가 우선이었어야 했다.
한 대표도 ‘당원게시판’ 논란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논란은 11월 5일 한 유튜버가 “한 대표와 아내 등의 이름으로 윤 대통령 내외를 비난한 글이 당원게시판에 올라왔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한 대표는 보름이 지나서야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다”, “위법 등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제가 건건이 설명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는 애매한 입장을 냈다. 그 뒤로도 당원 ‘한동훈’은 동명이인이라면서, 가족도 모두 동명이인이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쓴 글이 아니다”라고만 하면 끝날 일을 “(당원 보호를 위한) 당의 의무가 있다”고 엉뚱하게 답하니 논란이 이어지는 거다. 지금 여당이 그럴 때인가.
선거철마다 정계의 영입 제안을 받던 한 기업인은 “꿈은 있었는데, 아내가 반대해 포기했다”고 했다. 아내와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면 저렇게 정치 욕심도 접는 게 맞다. 공직자나 공인이 되는 순간 가족에 대해서도 더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올가을 대한민국은 소비 투자 생산이 모두 후퇴하는 초유의 저성장 위기 앞에 서 있다.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전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기 가족만 소중한 정치인들 탓에 정치판은 오늘도 되는 건 없고 시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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