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현]사랑꾼 남편들만 남은 한심한 대한민국 정치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2일 23시 12분


김지현 정치부 차장
김지현 정치부 차장
올가을 대한민국 정치판엔 온통 사랑꾼 남편들만 있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각자 자기 아내 감싸기에 혈안이고, 한동훈 대표도 아내 등 가족이 연루된 것 아니냐는 ‘당원게시판’ 논란에 한 달 가까이 휘둘리고 있다. 평소 참 말이 많고 반응도 빠른 그답지 않은 모습에 “아내 지킴이가 한 명 늘었냐”는 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1월 7일 대국민담화에서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아내 사랑을 쏟아냈다. 김건희 여사의 국정개입 논란에 대해 묻자 “(국정농단에 대한) 국어사전을 새로 정리해야 한다”, “제 처를 많이 좀 악마화시킨 건 있다”, “(아내가) 어떤 면에서 순진한 면도 있다”고 했다. 귀를 의심하게 하는 답이었다. 야당은 김 여사에 대한 수사 대상으로 주가조작 의혹부터 디올백 수수, 인사 개입, 선거 개입, 채 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대통령 집무실 관저 이전 의혹 등 무려 13건을 꼽고 있다. 의혹의 가짓수와 종류만 봐도 “순진하다”고 감쌀 상황은 아닌 듯하다.

이에 질세라 이재명 대표도 11월 14일 아내 김혜경 씨를 향한 구구절절한 러브레터를 띄웠다. 김 씨는 이날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 부인 3명에게 경기도 법인카드로 10만4000원어치 밥을 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김 씨에게 150만 원 벌금형을 내리면서 “선거의 공정성 및 투명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었다”고 했다. 액수를 떠나 행위의 의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김 씨가 사전에 알았든 몰랐든, 밥값이 얼마였든, 경기도 법카를 부적절하게 쓴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유감 표명은커녕 자신의 페이스북에 보란듯이 “아내는 희생제물”이라며 “혜경아,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고 썼다. 아내를 향한 애절한 마음은 집에서 말로 했어도 됐다. 그 전에 최소한 경기도민에 대한 사과가 우선이었어야 했다.

한 대표도 ‘당원게시판’ 논란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논란은 11월 5일 한 유튜버가 “한 대표와 아내 등의 이름으로 윤 대통령 내외를 비난한 글이 당원게시판에 올라왔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한 대표는 보름이 지나서야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다”, “위법 등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제가 건건이 설명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는 애매한 입장을 냈다. 그 뒤로도 당원 ‘한동훈’은 동명이인이라면서, 가족도 모두 동명이인이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쓴 글이 아니다”라고만 하면 끝날 일을 “(당원 보호를 위한) 당의 의무가 있다”고 엉뚱하게 답하니 논란이 이어지는 거다. 지금 여당이 그럴 때인가.

선거철마다 정계의 영입 제안을 받던 한 기업인은 “꿈은 있었는데, 아내가 반대해 포기했다”고 했다. 아내와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면 저렇게 정치 욕심도 접는 게 맞다. 공직자나 공인이 되는 순간 가족에 대해서도 더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올가을 대한민국은 소비 투자 생산이 모두 후퇴하는 초유의 저성장 위기 앞에 서 있다.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전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기 가족만 소중한 정치인들 탓에 정치판은 오늘도 되는 건 없고 시끄럽기만 하다.

#윤석열#이재명#김건희#가족#국정농단#아내 사랑#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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