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시대는 고작 100여 년 남짓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찰나도 되지 않는 순간에 존재하며 이처럼 지구를 위협한 발명품은 없었을 것이다. 1일까지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을 위한 정부 간 협상이 진행된 부산 벡스코에선 환경 운동가들이 폐그물에 목이 걸려 죽은 바다거북 사진, 범고래 뱃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병을 들고 “이젠 인간 차례”라고 호소했다. 햇빛과 바람, 물에 깎이고 쪼개진 지름 5mm 이하인 미세 플라스틱은 입자가 작아 어디든 침투할 수 있는 데다 화학물질에 쉽게 달라붙어 ‘죽음의 알갱이’로 불린다. ‘죽음의 알갱이’가 된 플라스틱이 먹이사슬을 타고 인간까지 공격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처음 학계에 보고된 건 2004년이다. 이후 20년간 7000건이 넘는 관련 논문이 발표됐는데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를 종합적으로 리뷰한 논문이 실렸다. 지금까지 물고기, 포유류, 새, 곤충을 포함해 1300종 이상의 동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미세 플라스틱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남극과 심해저에서도 발견된다. 공기와 물, 음식이 오염됐는데 인간만 무탈할 리 없다. 폐, 간, 신장, 혈액, 고환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 침투가 어려운 구조라고 봤던 뇌와 심장에서도 발견됐다.
▷미세 플라스틱은 세포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흡착된 독성 화학물질을 배달한다. 소화기와 호흡기를 망가뜨리고 호르몬을 교란해 발달 장애, 생식 장애를 일으킨다.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촉진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인 쥐의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등 치매도 유발한다. 장기적인 유해성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스틱과 당장 헤어질 결심을 하기는 어렵다. 면봉부터 전투기까지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60년이면 플라스틱 생산량이 12억3100만 t으로 2019년의 약 3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친환경 정책으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자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미국 셸 등은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를 짓고 있다. 정유회사들이 플라스틱 생산으로 눈을 돌린 것도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022년 유엔환경총회에서 처음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제안됐고 그간 네 차례에 걸쳐 각국이 협상을 진행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부산에서 열린 마지막 5차 협상 역시 빈손으로 종료됐다. 핵심 쟁점은 플라스틱 원료 물질인 폴리머 생산 규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이를 격렬히 반대한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한 번 태어나면 영생을 누린다. 생산 규제가 늦어진다면 꼭 플라스틱을 써야 할지 묻고 또 물으면서 덜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지구도 살고, 나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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