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간 온라인 거래, 개인정보보호 대책 필요[기고/이성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4일 22시 57분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중고 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판매자나 구매자의 지위에서 활발하게 중고 물품을 거래하고 있다. 이처럼 중고 거래가 활성화된 데에는 혁신적인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의 역할이 컸다. 중고 거래는 불필요한 물품을 처분하고 또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중고 거래 물품의 정보와 거래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는데 중고 물품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플랫폼, 인접 지역 내 이용자들 간의 대면 중고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런 단점이 극복되고 있다.

다만, 중고 거래 시장의 급격한 확장에 따라 물품 구매자인 소비자 보호에 대한 우려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국내에서 온라인 거래의 소비자 보호를 위한 대표적 규제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에 따른 규제다. 그런데 전자상거래법은 사업자와 소비자 간(B2C) 거래를 하면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 현재 중고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자 간(C2C) 거래를 예상하고 만들어진 법제가 아니어서 동 법을 C2C 거래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조항이 법 제20조 제2항인데, 이에 따르면 중고 거래 플랫폼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사업자인 판매자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생년월일 등 신원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과연 이 조항을 C2C 거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C2C 거래의 경우에도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이 있지만, 사업자와 달리 개인 판매자의 신원정보는 헌법상 보호되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달리 볼 필요가 있다.

개인 판매자의 신원정보 제공은 프라이버시에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토킹, 사기 등 범죄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판매자의 신원정보 제공 의무를 ‘trader(판매자)’로 한정하고 있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현행과 유사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개인 판매자와 소비자 간 불미스러운 방식의 사적 해결을 조장하는 등 소비자 보호라는 효용을 능가하는 개인정보 공개에 따른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비자 보호라는 목적에 비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입법이라고 판단해 위 개인 판매자 정보의 제공 의무를 삭제하는 대신 이 정보를 공적분쟁 조정기구에 제공하도록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결국 이 건은 소비자 보호보다는 개인정보보호의 필요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중고 거래 플랫폼에 개인 판매자 신원정보 제공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약 이를 강제한다면 개인들은 온라인을 통한 중고 물품 판매를 꺼리게 될 것이며, 결국 중고 거래 플랫폼의 사업 구조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중고 거래 플랫폼의 혁신과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C2C 거래의 참여자로서 구매자, 판매자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도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규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정 이후 20년 가까이 큰 변화 없이 유지돼 온 전자상거래법은 혁신적인 중고 거래 플랫폼을 규제하기에는 너무 낡은 틀이다. 법령을 정비하는 한편 우선 가이드라인 등 자율규제안을 마련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중고 거래#온라인 거래#전자상거래법#C2C#개인정보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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