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 요건인 ‘비상사태’라 보기 어려워
국회 활동 금지한 포고령도 헌법 위배
계엄군 진입-구금 시도는 내란죄 소지
정치적 위기 돌파 위한 악용 용납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이 3일 한밤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지만 국회에서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면서 무위로 끝났다. 비상계엄령이 발령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튿날인 1979년 10월 27일 0시에 선포돼 1980년 5월 17일 광주 민주화 항쟁 전날 제주도까지 확대 선포된 이후 45년 만이다. 이날 158분간의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한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위법적, 위헌적 소지를 갖고 있다.
헌법 제77조가 규정한 비상계엄은 실질적 및 절차적 요건을 갖출 때만 선포될 수 있다. 실질적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상황적 조건이다. 지금 상황이 전시나 사변이라 할 수는 없으므로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여야만 비상계엄이 성립한다. 누가 이 비상사태를 판단해 선포하는가는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전속되어 있지만, 선포 이후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회도 비상 사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절차적 요건으로는 헌법 제89조에 따른 국무회의 심의와 계엄 선포 후 국회 통고가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심의 결과를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대통령 단독이 아니라 국무위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적 취지라고 볼 수 있다.
3일 밤의 계엄 선포가 과연 위의 두 요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윤 대통령은 종북 및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킬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대통령 스스로가 자유 헌정 질서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줄곧 있어 왔다. 아울러 ‘비상’이 ‘평상’과 ‘정상’에 반대된다는 의미라면 3일까지의 국가적 상황이 ‘비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야당의 잦은 탄핵 발의와 과도한 예산 감액 및 단독 처리를 문제 삼은 듯하나, 그 어느 것도 전시·사변에 준할 만큼 평상과 정상을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탄핵 발의와 예산 삭감은 미래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지 이미 발생한 상황은 아니다. 헌법은 예방적 계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국무회의 심의 과정도 논란이다. 3일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가 열리긴 했으나 의결 정족수만 넘길 정도인 11명의 국무위원만 참석했고, 대다수가 계엄에 반대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독단적인 판단을 막기 위해 절차적 요건을 강조한 헌법적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계엄 선포 후 내려진 포고령은 마치 유신시대 긴급 조치의 포고령을 다시 보는 듯하다. 헌법상 비상계엄이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침해할 수 없음에도 포고령은 버젓이 국회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전공의 등의 복귀 명령은 더욱 뜬금없다. 포고령 자체가 위헌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비상계엄의 선포가 위헌·위법적 행위라면, 3일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행위는 형사상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특히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제한했고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주요 국회 지도자들에 대한 구금 시도가 있었다면, 명백히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서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 내란죄는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예외로서 수사와 기소로 이어질 수 있다. 곧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형사사법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법 집행에만 충실하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하는 대통령은 평상적인 수단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비상적인 수단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까지의 권위주의 독재 정부들은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숱한 비상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경찰 세력, 군부 세력, 재벌 세력, 독재 세력 등을 모두 극복하고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달성하였다. 어쩌면 윤석열 정부는 우리 사회의 조직화된 부분 세력으로서 검찰 세력이 마지막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식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보며 2차 비상계엄 선포가 뒤따르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기본적으로 비상계엄은 국가 긴급권이고 비상적인 권한이다. 역사적으로 국가 긴급권은 자연적, 사회적 재난보다는 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용됐다. 이런 사태가 두 번 다시 재발하지 않으려면 비상계엄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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