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교통장관으로 폭스비즈니스 TV쇼 진행자였던 숀 더피 전 하원의원을 지명하며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DEI는 인종차별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월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한 말이다.
도대체 DEI가 뭐길래 미국 보수진영의 집중 포화를 맞는 것일까.
DEI는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약칭이다. DEI는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과 비슷한 의미인 ‘워크(woke·깬 의식)’의 한 축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워크 척결 운동이었다.
DEI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생각보다 오래됐다. 미국에서 1964년 고용과 승진에서 인종, 성별, 출신국, 종교, 나이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발효되면서다. 형평성은 각자의 사정을 감안한 환경을 설정해 출발선을 맞춰주자는 것, 포용은 각자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의견을 개진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차별을 금지하자며 ‘순수하게’ 출발한 셈이다.
이런 DEI가 역차별과 분열로 이어졌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문제는 정치적 오남용에서 비롯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1년 연방정부 직원들의 DEI를 향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랜스젠더를 위한 성 중립 시설을 확대하는 것뿐 아니라 전과자의 공공기관 고용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러자 군대와 과학계에도 DEI가 파고들며 부작용을 냈다. 지난달 유명 물리학자 로런스 크라우스는 지난해 미국 과학계 보조금을 ‘챗GPT4’로 분석했더니 10%가 과학 연구가 아닌 DEI에 사용됐다고 했다.
반(反)DEI 움직임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재빨리 발을 빼기 시작했다. 미국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는 지난달 말 여성이나 소수 민족이 소유한 납품업체에 우선적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직원 대상 인종 평등 교육도 축소하기로 했다. 10월 말 보잉은 DEI 담당 부서를 해체했고 포드, 할리데이비슨 등도 관련 기능을 축소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DEI 척결 역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다양한 시각에 기반한 혁신이 저해될 소지가 있다. 한국만 보더라도 젠더 갈등이 극심하고 일자리를 중심으로 세대 갈등이 촉발되고 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젊은 직원의 잦은 이직 원인 중 하나는 직장 내에서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즉 포용성의 결여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지멘스의 감독위원회는 20명 중 9명(45%)이 여성이며 7개국 출신 인사로 구성됐다. 지멘스의 최고다양성책임자(CDO)이자 최고사이버보안책임자(CCO)인 나탈리아 오로페자는 “성공적인 회사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회사다. 소속감의 정신은 모든 사람의 성장을 위한 미개척 기회를 찾고 기술 창조를 가능케 한다”고 했다.
소수집단 및 개인에 대한 배려가 역차별을 낳아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금 미국에서 시작된 DEI 척결 움직임이 다양성의 싹마저 자르게 될까 봐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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