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 정국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생각을 180도 틀었다. “계엄은 위헌적이나, 탄핵은 불가”였던 그가 6일 갑자기 “대통령 직무 정지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 군이 정치인 체포를 시도했고, 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이른바 ‘체포 리스트’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치권 지축을 뒤흔들 일이다.
▷‘체포 시도설’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입에서 시작됐다. 계엄이 무산된 직후 석연찮은 이유로 사직한 홍 전 차장은 6일 민간인 신분으로 국회 정보위에 출석했다. 그 자리에서 3일 밤 대통령과 충암고 출신인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통화한 내용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 (민주당이 경찰에 넘긴)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돌려줄 테니 방첩사를 도우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했다. 계엄 발표 20분쯤 뒤였다.
▷홍 차장은 곧바로 방첩사령관과 통화했는데, 체포 대상 정치인 이름을 불러줘 받아 적었다고 했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김민석, 박찬대, 정청래, 조국, 김어준, 김명수(전 대법원장), 김민웅(김민석 의원 친형), 권순일(전 대법관)… 순서였다고 했다. 홍 차장은 “여기까지 받아 적다가 미친 ×이구나 생각해 멈췄다”고 국회에서 말했다.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선관위원 1명, 민노총 또는 한노총 위원장 1명이 더 포함됐다고 했다. 계엄법상 현역 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법성을 다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재명 박찬대 등 야당 지도부 말고도 집권 여당의 한동훈 대표까지 체포 대상에 올랐다면 놀라운 일이다. 한 대표는 5일 대통령 면담 때 “왜 국회에 투입된 군이 나를 체포하려 했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왜 거론됐는지 의문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대장동 사건의 김만배 씨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친야 방송인인 김어준 씨는 여론조사 ‘꽃’을 통해 총선 여론조사 조작 가능성을 따지려 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홍 전 차장에 따르면 방첩사는 그날 밤 체포조를 투입했는데 정치인 위치를 못 찾아내자, 자신에게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고 한다. 체포한 뒤 경기 과천에 구금하는 계획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무런 조치를 않았다”며 무관함을 주장했는데, 수사로 가릴 일이다. 그가 어마어마한 통화 내용을 직속 상관인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보고했는지를 두고도 양쪽 진술이 엇갈린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최초의 체포 계획이 성사됐다면 어떤 일이 이어졌을까. 2차, 3차 체포 리스트가 없으리란 법도 없으니,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왔을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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