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비상계엄 선포 후 나온 포고령에는 “전공의 등 파업 중이거나 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은 48시간 내 복귀해야 하고 위반 시 처단한다”는 문구가 있다. 역대 계엄 포고령 중 특정 직군이 언급된 건 처음이다. 이 문구를 보며 “윤석열 대통령 등 계엄 주도 세력이 의정 갈등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계에서 ‘분노’와 ‘황당’이 교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실한 현실 인식에 비현실적 해법
첫째, 엄격히 말하면 현재 파업 중인 전공의는 극소수다. 사태 초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던 보건복지부가 6월 사직을 허용해 전공의 86.7%의 사직서가 수리됐기 때문이다. 현재 근무 중인 전공의까지 감안하면 사직도 근무도 안 하는 이른바 ‘파업 전공의’는 전체의 5% 미만이다.
둘째, 사직 전공의 과반은 이미 개원가 등에 재취업했다. 중증·필수의료 현장이 아닐 뿐 이미 의료현장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머지 중 상당수는 인턴이나 저연차 레지던트로 안 돌아간 게 아니라 못 돌아간 측면이 크다. 사직 전공의가 개원가에 쏟아지자 동네 병원들이 도움이 되는 고연차를 주로 뽑았기 때문이다. 한 사직 인턴은 본보에 “병원 100곳에 지원했는데 연락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복귀하라’니 당장 “어디로 돌아가란 말이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셋째, 의료공백 사태 직후 정부는 ‘주동자·배후세력 구속’ ‘의사 면허정지’ ‘구상권 청구’ ‘의대생 휴학 금지’ 등 강경 대책을 쏟아냈지만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고 의사들의 반감만 키웠다. 결국 복지부와 교육부가 방향을 바꿔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을 허용하자 의대 교수들이 자리를 지키며 의료대란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을 동원해 ‘처단’하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건 현실감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 초 의료공백 사태 직후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이 “환자를 떠난 전공의는 총을 버리고 떠난 전방 군인과 같다”며 격분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전공의는 수련생으로 대형병원이 이들에게 의존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 한국 의료의 일면이었다. 군대에 비유하자면 ‘전방 군인’이 아니라 ‘훈련생’이다. 훈련생이 대우에 불만을 품고 단체 이탈했다고 안보에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전공의 제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거칠고 어설픈 대책을 반복하는 동안 사태 해결은 점점 멀어졌다. 윤 대통령은 4월 초 ‘의료개혁에 후퇴는 없다’는 대국민 담화로 여당의 총선 패배를 자초했고, 추석 전 응급의료 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지지율 하락세가 가속화됐다. 여기에 ‘김건희-명태균 리스크’가 현실화되며 정권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태가 이렇게 된 게 전공의 탓이라며 이를 가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전공의 처단’ 문구가 포고령에 들어간 걸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전공의 집단행동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정부는 대비를 제대로 안 했고, 주요 국면마다 자살골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결국 윤 대통령과 정부의 실력 부족이 국민 80%가 찬성했던 정책을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실력은 없는데 고집만 세 실패 반복
윤 대통령은 의료 전문가가 아니다. 잘 모르는 분야에 손을 대려면 주변 조언을 충분히 듣고, 추진 중에도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다. 하지만 실력은 없고 이해는 부족한데 고집만 세니 일 년 동안 같은 실패를 반복하며 환자와 국민이 10개월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윤석열식 의료개혁을 자성해야 할 마당에 전공의를 탓하는 포고령이 나오니 말 그대로 황망할 따름이다. 오죽하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포고령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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