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대한민국호(號)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발 쓰나미가 덮쳐 오고 있는데 키를 잡아야 할 선장마저 사실상 부재한 처지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6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이러한 관세 폭탄은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의 무역 보복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무역 감소와 경제 침체로 이어질 것이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최악의 상황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함께 불법 이민 노동자 추방이 단행될 경우, 수입 물가 상승과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준은 금리 인하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시장금리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트럼프 당선 후 미국 달러화는 주요국 통화 대비 강세를 보였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나들고 있었다. 비상계엄령 사태가 발생하자 환율은 한때 1446원까지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었던 적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뿐이다. IMF 외환위기가 있던 1997년 초만 하더라도 원-달러 환율은 845원이었으나, 11월 들어 외국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로 11월 17일 1000원을 돌파했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뒤인 12월 22일에는 1995원까지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을 800원대로 무리하게 방어하려다 외환보유액을 허비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2024년 11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154억 달러이다. 이는 2021년 10월 말 4692억 달러에서 538억 달러가 감소한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은 24%로, 대만(75%)과 홍콩(110%)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1997년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대기업들의 무리한 단기 차입과 문어발식 경영이었다. 이로 인해 1997년 1월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발생했다. 이러한 허약한 경제 상황 때문에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가 한국에까지 전염되었던 것이다.
2024년의 한국 경제는 기업부채보다 가계부채가 문제다. 가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가계자산의 79%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후반 주택 가격이 하락하며 부동산 PF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대출 등의 이름으로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계속해 왔다.
이로 인해 가계의 소비 여력이 감소하며 내수경기가 침체하고,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자금도 줄어들어 주가는 하락해 왔다. 코스피는 지난 3년간 19.9% 하락했고, 코스닥은 35.4%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0.5%, 나스닥지수는 28.0% 상승했고,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36.0%, 대만 자취안지수는 29.5% 상승했다. 반면, 부동산 거품 붕괴와 미국과의 무역 마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는 7.3% 하락에 그쳤다.
1997년에는 외국인 투자금의 이탈로 외환위기가 촉발되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발 외부 충격과 정국 혼란이라는 내부 충격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자금도 해외로 탈출하는 뱅크런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IMF의 힘을 빌려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경제를 바로 세웠다. 2024년에는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정치도 바로 세우고, 경제도 바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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