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9일 23시 21분


2024년 한 해를 성찰하는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됐다. 도량은 살쾡이가 껑충거리며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뜻한다. 장자의 ‘소요유’ 편에 나오는 문구라고 한다. 발호는 한자 그대로 풀면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중국 한나라 때 권력을 장악했던 외척 양기를 ‘발호장군’이라 일컬은 데서 나온 말이다. 오만방자한 권력을 풍자한 것이다. 도량발호는 두 단어를 합친 ‘신(新)사자성어’인 셈이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전국 대학교수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아 왔다. 올해는 한밤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날인 2일까지 진행됐다. ‘도량발호’를 선택한 이유로 교수들은 그간 국민 위에 군림만 하려는 듯한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를 꼽았다. 부인의 명품백 수수를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감싼 것을 비롯해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 2000명 발표, ‘런종섭’ 논란 등 일반 상식과는 동떨어진 잇단 독선과 실책으로 총선에 패배하고도 국회를 무시한 채 ‘마이 웨이’를 고수해 온 현 정권을 향해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고 꼬집은 것이다.

▷다수의 교수들이 도량발호로 의견을 모은 다음 날인 3일 윤 대통령은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도량발호가 교수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이번엔 영부인 보호 등을 위한 권력 남용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군(軍)을 포함해 아예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수준까지 치달았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군과 경찰이 국회에 침투하고, 정치인을 체포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후유증을 어찌 감당할지, 어떻게 국가 시스템을 복원해야 할지 암담하다.

▷교수들이 뽑은 다른 사자성어들도 어지러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2위인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모르고, 이에 따라 수치를 모르는 세태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3위를 차지한 ‘석서위려(碩鼠危旅)’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는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끊임없는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는 안타까움을 담은 표현이라고 한다.

▷역대 사자성어는 무도한 권력에 대한 경고음을 꾸준히 울렸으나 권력에 취한 어느 대통령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에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 이듬해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선택됐다. 이런 민심을 읽고 조금이라도 겸손했다면 어땠을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사자성어#도량발호#권력 남용#윤석열 대통령#비상계엄#사회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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