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정족수(200명)를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진 7일 밤. 국민의힘은 표결에 나선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 등 3명과 그렇지 않은 105명으로 나뉘었다.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은 ‘투표 불참으로 부결’ 당론에 따른다며 먼저 진행한 김건희 특검법에만 표결한 뒤 차례로 본회의장을 떠났다.
안철수 의원은 여당 의원 중 홀로 본회의장을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탄핵소추안 표결을 마친 뒤에는 “국회법에 충실하고 헌법기관으로서 임무와 소신에 따라 투표했다”고 했다.
본회의장을 잠시 나갔던 김예지 의원도 탄핵소추안 투표가 시작되자 곧장 본회의장으로 돌아와 표결에 참여했다. 김예지 의원은 이후 “제가 대리해야 하는 시민을 대신해 들어간 것이다. 국회의원의 책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했다.
탄핵소추안 투표가 시작된 지 30분쯤 지나 김상욱 의원도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김상욱 의원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정치 생명을 그만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섰다”고 했다.
이들 3명은 국민의힘 당론을 어겼다. 국민의힘 당헌은 ‘당원은 결정된 당론에 따를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그럴 일이 있겠느냐만 원칙상으론 당론을 어긴 이들은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사실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열린 국민의힘 비공개 의총에선 투표 불참 당론을 두고 반대 목소리도 상당했다. 주로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냈다. “떳떳하게 정치하고 싶다” “국회의원인데 투표를 해야 하지 않느냐” 등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목소리를 낸 의원들도 결국 당론을 따른다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헌법 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돼 있다. 국회법 114조의 2에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돼 있다.
최소한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든 공개석상에서든 “윤 대통령의 탄핵이 필요하다”고 했거나 “탄핵소추안 투표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던 의원들은 양심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는 헌법과 국회법을 어긴 셈이 됐다.
국민의힘 주류 의원들이 탄핵소추안 당론 부결 방침을 정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있다. “이재명의 나라는 안 된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은 보수진영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불모지로 만들 것이다”라는 것이다. 여당 의원으로선 낼 수 있는 목소리다. 그러나 의원들이 표결 불참 당론을 따른 건 다른 문제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국민이 준 본회의 투표 권한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했다. 여당의 한 의원은 “다 부결하기로 했으면 들어가서 당당하게 했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당론에 따른다며 105명의 여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은 결과는 어떤가. 당장 윤 대통령의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여당으로 전이됐다. 윤 대통령과의 디커플링으로 한 발짝 떨어져 사태를 수습해 보려던 당 지도부의 시도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다시 한번 차분히 당론이 헌법과 법률을 앞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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