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일주일이 돼 가지만 대한민국은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혐의 피의자’로 정식 입건됐고 출국도 금지됐다. 윤 대통령이 관저에 칩거하면서 용산 대통령실은 정례 회의조차 열리지 않고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여기에 국무총리실마저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눈치만 살피고 있다. 행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마비되면서 국정 전반의 공백, 정부 실종 사태에 빠진 형국이다.
이런 국정 중추의 진공 상태를 낳은 원인은 내란죄 형사소추가 불가피한 대통령의 거취가 여전히 불확실한 때문일 것이다. 국정 회복을 위해선 자신의 무도한 행위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함에도 자신의 운명을 여당에 떠넘긴 채 침묵하는 ‘무책임 대통령’에다 여야가 각기 정치적 유불리 계산에 빠져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력 국회’가 빚은 합작품이다. 그런 정치 실패가 국정마저 진창 속에 처박아 넣은 셈이다.
그렇다고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의 공동 국정 운영이라는 변칙이 비정상 탈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당장 국회의장과 야당이 위헌적 행태라고 반발하면서 한덕수 총리의 ‘대행 아닌 대행 체제’는 작동 불가 판정을 받았다. 더욱이 권한을 위임하고 2선 후퇴했다는 윤 대통령은 버젓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최소한 국회의 동의를 받은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리하지 않는 한 어떤 임시방편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당장 안보 불안은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현재 국군 통수권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지만 내란 혐의 피의자의 군 통수권은 이미 자의 반 타의 반 무력화된 데다 위헌적 비상계엄 이후 군 지휘체계마저 망가진 상태다. 외교도 고립돼 가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각국과 예정된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고 향후 일정에서도 제외되면서 ‘한국 패싱’은 심화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에 계엄 후폭풍은 치명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 주식시장에선 외국인의 집중 매도세에 이어 개인투자자마저 ‘패닉 셀(공포에 따른 투매)’에 나섰다. 신용평가사들도 한국의 정치 불안이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추진해 온 4대 개혁도 사실상 중단됐고, 특히 의료 개혁은 의료계가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리면서 멈춰 섰다.
대통령 2선 후퇴니, 질서 있는 퇴진이니, 공동 대행 체제니 정치적 언사가 난무하지만 어떤 임시변통도 지금의 불확실과 무질서를 제거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버티고 여당이 갈팡질팡할수록 국민 고통의 시간은 연장될 뿐이다. 우리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맞게 위헌·불법 사태를 바로잡고 민주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만이 지금의 비정상을 극복하고 예측 가능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그래야 시장도 세계도 한국을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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