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기업가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많은 사람은 미국 서부의 스탠퍼드대를 떠올릴 것이다. 스탠퍼드대는 창업가들을 기르기에 최적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학교 설립 시부터 실용성과 혁신성을 공부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어서 단순 기술 개발에서 나아가 기술의 사업화까지 중시했다. 실리콘밸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어 스타트업 생태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실제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레드릭 터먼과 윌리엄 쇼클리는 모두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이다.》
美 서부 개척시대 철도개발의 주축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은 엔비디아와 구글 같은 기업들을 창업했고 그들이 창업한 기업들의 주식 가치는 우리나라 모든 주식 가치를 합한 것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면, 수많은 창업가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 스탠퍼드는 누가 설립했을까? 짐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스탠퍼드대의 설립자는 스탠퍼드다. 릴런드 스탠퍼드와 제인 스탠퍼드 부부의 성을 땄다. 참고로 하버드대는 하버드 대학의 최초 기부자인 존 하버드의 이름을 땄다.
릴런드 스탠퍼드는 원래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1852년 골드러시로 떠오르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캘리포니아는 당시에는 황량한 개척지였지만, 그곳에 기회의 땅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릴런드 스탠퍼드는 서부 개척지의 미래를 연결하는 데 철도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1861년에 마크 홉킨스, 찰스 크로커, 콜리스 헌팅턴과 함께 센트럴 퍼시픽 철도를 설립했고, 이들은 ‘빅 포(Big Four)’로 불리며 서부 철도 개발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186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동쪽으로 확장하던 센트럴 퍼시픽 철도와 네브래스카주에서 서쪽으로 확장하던 유니언 퍼시픽 철도가 연결되며 세계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었다. 이는 미국 서부와 동부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며 경제와 이주의 흐름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센트럴 퍼시픽 철도는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 유타를 넘어 미국 중부까지 연결하며 서부의 물류와 교통의 중심이 되었다. 이로 인해 서부 지역은 고립된 개척지에서 미국 경제의 주요 축으로 탈바꿈했다.
릴런드 스탠퍼드는 이 철도 사업으로 큰 부를 모았고 이 자본은 추후 창업의 요람 스탠퍼드 대의 밑거름이 된다. 이후 릴런드 스탠퍼드는 1862년부터 1863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다.
부부의 삶은 아들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의 죽음으로 인해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스탠퍼드 부부는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40대 중반에 아들을 얻었는데, 외동아들은 1884년 이탈리아 여행 중 장티푸스에 걸려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비극은 스탠퍼드 부부에게 엄청난 슬픔을 안겼다.
엔비디아-구글-HP 등 창업자 배출
하지만 그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다. 릴런드 스탠퍼드와 제인 스탠퍼드는 그의 아들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를 기릴 방법을 고민하던 중, 당시 미국 최고의 대학이었던 하버드대에 큰 금액을 기부해 자신의 아들 이름을 새로운 건물에 새기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스탠퍼드 부부가 하버드 총장을 만나러 갔지만 그들의 수수한 옷차림과 검소한 모습을 보고 오해한 하버드 직원이 “기부보다는 작은 기념물 정도로 아들을 기릴 것을 고려해 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에 스탠퍼드 부부는 “우리는 작은 기념물이 아니라 아들을 기릴 대학을 세울 것”이라고 대답한 뒤 하버드를 떠났다고 한다. 결국 직원의 실수로 하버드대는 서부에 강력한 라이벌 대학을 갖게 되었다. 릴런드 스탠퍼드는 아들을 기린 대학을 세우며 “캘리포니아의 모든 아이가 우리의 자식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1885년 스탠퍼드 부부는 그들이 이룬 부 대부분을 기부해 대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인류와 문명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교육기관을 목표로 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점도 몇 가지 있었는데, 등록금 없이 운영되는 학교로 출발했으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스탠퍼드 부부는 스탠퍼드대 설립 시 서부 개척 시대의 새로운 정신을 반영하며, 전통적 동부 엘리트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난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교육 철학을 채택했다. 이는 캘리포니아를 넘어 서부 전역의 고등교육을 혁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버드, 프린스턴 등 동부 아이비리그는 주로 전통적 학문 연구에 초점을 맞춘 반면, 스탠퍼드대는 설립부터 농업, 공학, 기술 등 실질적인 분야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이 졸업 후 바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 설립에 투자된 금액은 약 2000만 달러였다. 당시 미국 대학 사상 가장 큰 기부로, 다른 대학들의 규모와 비교했을 때도 압도적이었다. 예를 들어 1880년대 하버드의 연간 예산은 약 45만∼50만 달러였으며, 총기금(오늘날의 기부금 펀드와 유사한 개념)은 약 300만∼400만 달러 수준이었다고 한다. 즉, 스탠퍼드 부부의 기부는 당시 동부 대학들이 축적한 수십 년의 기금을 단숨에 넘어서는 규모였고, 이러한 압도적인 금액이 기존 명문 대학을 뛰어넘고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다음 사람에게 갚자” 기부의 선순환
스탠퍼드대는 오늘날 엔비디아, 구글, 넷플릭스, 나이키, TSMC, HP(휼렛패커드)의 창립자 등 수많은 창업가를 배출해 냈다. 학교의 혜택을 받고 성장한 이들이 ‘Pay it forward(다음 사람에게 갚자)’ 정신을 살려 다시 학교에 기부하면서 교육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참고로 스탠퍼드대의 기부기금(Endowment Fund)은 2023년 회계연도 기준 약 51조 원이고 가장 큰 기부기금을 가진 하버드대의 기부기금은 약 70조 원이며, 서울대의 기부기금은 약 7000억 원이다.
필자에게 어느 대학의 문화가 가장 부럽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스탠퍼드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이를테면 훌륭한 법조인, 훌륭한 정치가, 훌륭한 의료진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대학 교수로서는 서울대가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을 얼마나 배출했으며, 그들이 세운 기업들이 얼마의 가치를 가지며, 얼마나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얼마나 많은 주주에게 부를 안겨주었는가 생각하게 된다. 과연 우리 대학들은 이런 기업가를 길러내고 있을까? 아니면 작은 성공에 안주하는 학생들을 키우고 있을까?
기업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특히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는 인재의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라 본다. 그런 핵심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속에서 어떤 수준일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국의 대학들을 세계 속에서 경쟁하게 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명문 대학에 가는 것까지는 엄청나게 관심을 쏟는 반면, 대학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더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사교육에는 엄청난 금액을 소비하면서 대학 교육 환경 개선에는 인색하다. 부디 많은 사람의 관심이 좋은 대학 보내기에 그치지 않고, 좋은 대학에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데까지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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