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빈칸이었던 어머니 삶을 찾아서[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0일 2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선생님은 전쟁의 북소리 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몸은 앙상했지만 칠판에 덧셈과 뺄셈을 쓰기 위해 분필을 쥔 손은 커다랬다. 우리는 모두 그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그를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유일한 남자 교사였고, 2학년이었던 나의 담임이었다. 그의 옆에 있으면 남자가 되는 길이 무척 가까워진 것 같았다. 가끔 집으로 전화를 걸던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나눈 어머니는 그가 파란 눈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한두 번, 아버지가 저녁 뉴스를 보는 시간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나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에 항상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담임 선생님은 불편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화를 이끌지 아는 사람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과 거의 평생 그런 대화를 나눠 왔기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학교 농구팀 감독이기도 했다. 꽉 끼는 바지에 깔끔하게 다림질된 셔츠를 입고 아주 정중한 자세로 미끄러지듯 학교 복도를 걸어 다니면서 여자 동료와 마주칠 때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성적표를 받으러 아버지와 함께 간 날엔 그는 전혀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가 떠오른 이유는 며칠 전 어머니가 불쑥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미겔(담임 선생님의 이름이다)은 그저 전화로 수다 떠는 친구였어.” 나는 어머니가 내 옛 담임 선생님과 그토록 오랫동안 친근하게 통화하는 사이인 줄 전혀 몰랐다. 어머니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밑도 끝도 없는 모자에서 사소한 왜곡이 섞인 이야기들을 꺼내 내 눈앞에서 흔든다. 수년 전 은퇴하여 경조증(輕躁症)이 있는 할머니가 된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어머니의 얘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믿기 어렵다.

열네 살 무렵 사춘기가 찾아와 인간으로서의 전환을 맞이하던 순간, 나는 학교에 가기 전 나를 안아주던 어머니라는 여성이 사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불교의 선승이 제자들에게 현실을 넓게 볼 수 있도록 훈련할 때 사용하는 ‘공안’이 내 마음속에도 심어졌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바로 이 질문이 나의 공안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작가가 되도록 이끈 질문이자 욕망이었을 것이다. 종이를 태웠을 때 잔해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을 볼 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왜곡이나 변칙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른 사람에게는 진부하고 흥미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삶뿐만 아니라 1950년대에 태어나고 자란 중산층 남미 여성의 삶에 어떤 결정체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허무에 삼켜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할 수 있다. 퇴근 후 집으로 걸려오던 초등학생 아들 담임과의 전화 통화를 넘어 어머니가 살았던 시간 속에서는 1950년대 보수와 진보 정치인 간 다툼으로 살해당한 내 외조부의 이야기와 1980년대 후반 공무원으로 일하던 어머니의 사무실 타자기로 날아 들어온 자동차 폭탄의 잔해 이야기, 1990년대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일하러 떠나야 했던 긴급 상황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지난해, 나는 마침내 이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에 펼쳐냈다. 1970년 4월 11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개최된 아르헨티나 가수 산드로의 공연을 보러 간 어머니. 당시 스무 살이었던 어머니는 뉴욕에서 살고 있었다. 산드로는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공연한 최초의 남미 가수였다. 역사상 최초로 위성을 통해 생중계되었던 공연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내려고만 애쓰다가 지친 세상 속에서, 이 콘서트 일화를 글로 옮기며 마치 하늘 높이 무수한 형태로 떠다니는 뚱뚱하고 게으른 구름처럼 소설이 아닌 문학도 모호하고 신비한 힘으로 부유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의 일곱 번째 책 ‘글로리아’는 내 어머니 글로리아의 하루라는 단순한 문학적 모티프에서 출발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다른 날이 18시간 속에 부호화된 책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속에서 음악을 찾았다. 이탈리아 비평가 피에트로 치타티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산문 ‘나비의 죽음(The death of a butterfly)’을 두고 했던 말처럼.

“대부분 사람에게 대부분의 것은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지만, 피츠제럴드에겐 음악으로 남았다. 작가에게 핵심은 잃어버린 것 자체를 찾기보다 잃어버린 것의 음악을 찾는 것이다.”

#어머니#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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