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무능한 명령… 실제 전투였다면 다 죽었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0일 23시 18분


테러범이 장악한 버스 앞을 무장차량이 가로막았다. 대원들은 해머로 유리창을 깨고 경사로를 만든 뒤 순식간에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 테러범을 체포했다. 불과 30초. 대원들의 눈엔 망설임이 없었다. 6월 공개된 대테러 작전 훈련에서 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은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릴 만큼 믿음직했다. 하지만 3일 밤 TV 속에선 정반대였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9일 김현태 707특임단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울먹였다. 김 단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 30분경 특전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과 국회의원 회관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 구조를 몰라 ‘건물 출입문만 잠그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앱인 티맵으로 국회 본청 건물과 헬기가 착륙할 운동장 위치를 확인한 게 작전 준비의 전부였다.

▷오후 11시 50분경 헬기에서 내려다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국회의사당은 너무 커서 소수 인원으론 통제가 불가능했다. 후문으로 갔더니 자동 유리문이어서 잠금이 어려웠다. 정문으로 가니 이미 기자들과 국회 관계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제야 창문을 깨고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던, 무엇을 위해 하는지조차 모르는 작전. 부대원들은 “우리가 여기서 지금 뭐하는 짓이지”라고 웅성거렸다.

▷무능하고 사악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건국 이후 평시 작전 중 가장 많은 군인이 희생된 것은 1982년 2월 제주도에서였다. 707특임대대 47명, 그리고 공군 장병 6명을 태운 C-123 수송기가 한라산 계곡에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현장에선 기상 악화로 이륙하기 어렵다고 보고했지만 위에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군은 ‘대침투작전 중 순직’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제주공항 활주로 준공식을 위해 제주도를 찾을 예정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경호가 목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707특임단이 국회를 봉쇄해 계엄 해제 요구안의 가결을 막고, 방첩사령부와 특수정보부대(HID)가 주요 인사를 체포·구금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간단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작전은 게임이 아니었다. ‘제복 입은 시민’인 장병들은 그들의 장기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무능한 지휘관들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최정예부대의 명예와 자존심은 짓밟혔다. 졸지에 계엄군이 됐던 장병들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

#테러범#장악한 버스#무장차량#707특임단장#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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