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윤정]탄핵정국의 장기화… 금융시장 덮친 불확실성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0일 23시 12분


장윤정 경제부 차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며칠을 가까스로 선방했지만 연이은 충격에는 장사가 없었다. 한국 금융시장의 이야기다. 3일 밤중에 터진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언에도 금융시장은 4∼6일 잘 버텨냈다. 출렁였으나 그래도 ‘쇼크’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다. 경제·금융당국이 긴박하게 움직이며 50조 원 상당의 유동성 조치를 내놓은 공이 컸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발 빠른 대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 대니얼 모스는 4일(현지 시간) “자본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의 숨은 영웅(Unsung Hero)”이라는 칼럼에서 “당국자들이 소란 없이 시스템을 백스톱(backstop·방어)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비상계엄까진 참아낸 금융시장도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불발에 따른 탄핵정국 장기화에는 흔들리고 있다.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7일 탄핵 표결을 앞두고 시장 전문가들이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금융시장을 위해서는 탄핵 가결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탄핵은 이미 ‘겪어본 길’이고, 탄핵으로 방향이 정해지는 게 불확실성을 제거해 준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탄핵은 불발됐고 앞으로 대통령의 권한은 어떻게 되는지, 정부 운영의 ‘키’는 누가 쥐고 가는지 불확실성이 겹겹이 쌓인 상태가 됐다. 게다가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금융시장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과거를 예로 들며 파장이 곧 진정될 것이라 애써 위안을 삼기도 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6년 12월∼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이 금융시장이나 성장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4년은 5%대 성장률을 유지하던 때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도 반도체 사이클 호조를 누리던 때다.

반면 2024년 현재는 한국 경제의 체력 자체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수출이 흔들리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한층 강화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도 악재로 평가된다.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한 정치적 폭풍이 밀려오기 전부터 한국 경제는 신음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목소리로 사태가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불러온 경제적 파장을 고려해 이제라도 여야가 합심해서 향후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로드맵을 보여준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결국 경제·금융당국이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맞춰 더 기민하게 움직여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위기를 극복해 본 노하우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 등에도 한국 금융시장은 휘청였지만 고꾸라지지는 않았다. 정치 리더십이 실종된 이때, 경제 분야 리더십이라도 굳건히 버텨줘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성의 파고를 넘어 다시 반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탄핵정국#장기화#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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