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리들 전부 방어하려면 최소 사단 병력 이상이 필요합니다.” 서울로 진격해 오는 반란군이 한강을 건너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이태신(정우성)의 말에, 강동찬(남윤호) 보좌관은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이태신이 말한다. “아니야, 우리가 막는 게 아니야…. 시민들이 도와야 돼….”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이 장면은 민주주의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탱크를 몰고 진격해 오는 반란군들의 무력 앞에 이를 막으려는 이태신 같은 군인이 존재하지만, 진짜 힘은 깨어 있고 행동하는 시민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는 걸 이태신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 12일, 그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군사 반란을 마치 실시간으로 중계하듯이 생생하게 그려낸 영화 ‘서울의 봄’은 무려 1300만여 명이 관람했다. 사실 역사를 통해 이미 그 결말이 어떻게 된다는 걸 모르는 관객은 없었을 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그 많은 관객이 봤던 건,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오래도록 겪은 아픔들을 되새기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게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1년여가 지난 올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갑작스레 선포된 비상계엄은 ‘서울의 봄’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45년 전과 사뭇 달랐다. 무장한 채 난입하는 계엄군들을 국회 보좌진들이 막아 세웠고, 모든 상황은 현장의 시민과 기자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결국 6시간 만에 상황이 종료된 건, 저 이태신이 말했던 시민의 힘 덕분이었다. ‘서울의 봄’이 아닌 ‘서울의 밤’. 그렇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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