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전권을 휘둘러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가담 혐의로 법정에 섰던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과 주영복 국방부 장관은 이런 주장을 폈다. 실제 당시 공식 지휘계통이던 주영복-이희성은 사실상 허수아비였고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하나회 라인이 내란을 주도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두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 ‘다른 사람의 힘에 밀려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하료(지위가 낮은 관리)의 일이고, 피고인들처럼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한 공직자에겐 이런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명령에 따랐을 뿐” 하급 관리나 할 변명
45년 만에 재연된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선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변명은 하급 관리나 할 소리’란 법원의 지적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고위 장성과 장관들이 계엄의 들러리를 자처할 때 위법한 지시에 맞선 건 영관·위관급 장교들이었다. 국군방첩사령부 법무관 7명은 중앙선관위를 장악하라는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지시에 반발했고, 현장 지휘관들도 부대원 투입을 거부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도록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 밖으로 끌어내라는 명령도 특수부대 중간 간부들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반면 4성, 3성 장군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현장에 내려보내기 바빴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에 임명돼 크게 당황했다고 주장하지만 포고령을 발표하고 경찰에 국회 통제를 요구하는 등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36만 육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서 국민과 장병들이 어떤 위험에 내몰릴지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결코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국회 군 투입 지시를 하달한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역시 명령에 따르는 시늉만 했다고 주장하지만 707특임단장에게 1, 2분 간격으로 30통 이상 전화를 걸어 지시를 전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계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군이 과연 따르겠나. 저라도 안 따를 것”이라고 했는데, 지시한 자도 통할 리 없다고 보는 명령에 군사령관들이 순종한 셈이 됐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계엄 발령에 앞뒤로 통제 장치를 뒀다. 국회 의결이 사후 통제라면, 사전 통제는 국무회의 심의다. 대통령이 오판할 땐 끝까지 설득해야 할 의무가 각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 절차가 요식 행위가 돼 버린 건 대통령의 독단 못지않게 저항을 포기한 국무위원들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9명 중 3명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강하게 만류했을지 의문이고, 나머지 6명은 방조자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특히 대통령의 최고 법률 참모로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계엄을 막았어야 할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사전 상의가 없었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상명하복은 지시가 정당하고 합법적일 때만 유효하다. 위법한 지시에 따른 공직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처벌 대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명령에 따른 것이란 이유로 면책될 수 없다’는 원칙이 정립되면서 법을 뛰어넘는 상명하복이란 없다는 게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위법 지시 못 맞설 거면 공직 맡지 말아야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고위 공직자의 무거운 책임을 재차 생각하게 한다. 지시의 위법성을 분별할 능력과 부당한 명령에 맞설 각오가 없다면 애당초 공직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위법하고 위헌적인 대통령의 계엄 의사를 확인하고도 자의든 타의든 허수아비가 돼 버렸다면 그 자체로 죄가 되는 자리가 장관과 사령관이다. 그런 공직자는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장을 멍하니 뒤따랐던 항해사, 기관사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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