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항구 도시 칼레의 랜드마크는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1884∼1889년·사진)이다. 칼레시청 앞에 설치된 이 유명한 청동 조각은 칼레시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대변하는 예술작품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백년전쟁이다. 1347년 영국 도버와 가장 가까웠던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칼레 시민들은 11개월간 포위된 채 사력을 다해 대항했으나 결국 굶주림 때문에 항복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모든 칼레 시민을 처단하고 도시를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나 왕비와 부하들의 조언을 듣고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칼레의 시민 대표 여섯 명이 자신에게 항복해 목숨을 내놓으면 나머지는 살려주겠다고 했다. 과연 누가 나섰을까? 시장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했고, 고위 관료와 부유한 상류층 인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은 영국 왕이 요구한 대로 맨발에 거친 가운을 걸치고 목에 밧줄을 두른 채 도시의 열쇠를 건네주러 앞으로 걸어 나갔다.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 순간을 담고 있다. 로댕은 이들을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대의를 위해 용기를 냈지만 여전히 절망과 두려움, 갈등과 패배의 아픔으로 고뇌하는 보통의 인간으로 말이다.
결국 이들은 처형당하지 않았다. 임신 중이던 영국 왕비가 배 속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왕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건의 진위에 대한 논란은 있다. 후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건이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 14세기 칼레 시민 대표들이 주는 교훈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을 구하겠다고 가장 먼저 제 목숨을 던질 용기 있는 지도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지도자를 가진 국가에 산다면 당신은 대단한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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