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철부어(涸轍鮒魚)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안의 붕어’라는 뜻으로 매우 곤궁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뜻한다. 장자의 외물 편에 나오는데, 붕어가 “물 한 바가지로 나를 살려주오”라고 외치자 장자는 “돌아오는 길에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답한다. 그러자 붕어는 “나는 지금 생사의 고비에 있어 한두 바가지면 된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최근 우리 중소기업들의 처지가 우화 속 붕어와도 같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고임금 등 4중고 속에 납품 대금 후려치기를 비롯한 다양한 불공정거래 피해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7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피해업체의 90.5%가 “피해 구제를 위한 대처조차 못 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5년간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거래 위반 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로 징수한 과징금이 1조986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대기업의 갑질이 인정되어 수백억 원대의 과징금을 징수해도 피해기업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경영 악화로 존폐에 내몰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과징금의 강물은 넘쳐나도 한두 바가지의 운영자금을 못 구하는 붕어 신세인 셈이다.
불공정거래 피해 중소기업이 현행법상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법적 제재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영세한 중소기업 대표가 사업 경영에만 사활을 걸어도 부족한데, 거래 단절을 감수한 채 대형 로펌을 앞세운 대기업과 맞서는 일이 결코 쉬울 리 없다. 또한 소송이 장기화해 파산하면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당장의 긴급한 금융 지원 등 국가 차원의 피해 구제 지원이 시급하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1대 국회에서 과징금을 활용한 불공정거래 피해기금 마련을 위한 법안이 세 건 발의되었으나 모두 폐기되었다. 기금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법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기획재정부는 안정적인 재원 조달이 곤란하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불공정거래 과징금은 2016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1000억 원 이상 꾸준히 징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피해기업에 대한 국가의 직접 지원이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그러나 조성된 기금을 융자, 금융 지원 등 피해자 지원 사업에 간접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법리상 문제가 없다. 응급의료기금, 식품진흥기금, 언론진흥기금 등 과징금을 기금의 재원으로 규정한 입법 사례도 이미 존재한다.
중소기업 하나가 사라지면 그만큼 일자리와 경제적 부가가치도 사라진다. 피해구제기금 설립을 통해 사전에 안전망을 구축하여 불공정거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안의 피해 중소기업이 합당한 구제를 받아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제 활력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 국회, 기업,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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