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정은]30년째 수능 문제 내는 평가원… 난이도 조절, 왜 계속 실패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2일 23시 15분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오, 마이 갓…. 말도 안 돼. 이걸 푼다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으로 올해 K리그 FC서울로 이적한 축구선수 제시 린가드가 지난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24번 문항 지문을 읽은 뒤 한 말이다. 린가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헛웃음을 지으며 “너무 어렵다”고 했다. FC서울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2025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지난달 14일 이 장면이 포함된 쇼츠(짧은 영상)가 올라왔다. “영국인도 어려워하는 수능 영어”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영어가 모국어인 린가드조차 어렵다고 한 문제는 지난해 수능에서 고난도로 손꼽혔던 문항이다. 과잉관광(overtourism)에 관한 내용을 다뤘는데 입시업체 메가스터디는 “동일한 어휘가 여러 번 중첩돼 선지에서 정답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두고 “킬러(초고난도) 문항을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해 11월 치러진 수능은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국어 수학 영어 영역의 체감 난도가 모두 전년도보다 높았고, 결국 ‘역대급 불수능’이란 평가를 받았다.

교육계에선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이 오히려 수험생 체감 난도를 높였고, 입시 직전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해 수능의 전 영역 만점자는 1명에 그쳤다.

교육 당국이 비판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걸까. 1년 뒤 치러진 올해 수능은 180도 달랐다. 올해 입시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입시에 재도전하는 최상위권 N수생이 늘며 ‘변별력 확보’가 필요했지만, 정작 수능은 평이하게 출제됐다. 전 영역 만점자는 11명이나 나왔다. 특히 국어 만점자는 1055명으로 지난해(64명) 대비 16.5배나 됐다. 수학 만점자도 1522명에 달했다.

‘널뛰기식 수능 난이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입시업계에선 ‘불수능 다음 해 물수능, 물수능 다음 해 불수능’이란 말이 공식처럼 나돌 정도다. 시계를 20여 년 전으로 돌려 보자. 2002학년도 수능은 1997학년도와 함께 ‘불수능’의 원조 격이라 불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수능으로 충격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며 공식 사과할 정도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직전 해 치러진 2001학년도 수능은 전 영역 만점자를 66명이나 배출한 ‘역대급 물수능’이었다. 입시업계에서 “변별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2002학년도의 불수능 역시 비판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탓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994년부터 매년 수능 정책 방향을 정하고 문제를 출제한다. 하지만 30년째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되풀이된다. 어려운 ‘불수능’만큼이나 평이한 ‘물수능’도 수험생의 혼란을 키운다.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측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평가원은 입시제도와 시험 난이도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 물수능과 불수능, 불수능과 물수능을 오가는 극과 극이 되풀이되는 것이 바로 가장 나쁜 입시 관리다.

#수능#평가원#난이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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