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에게 양보하며 재상 자리 막 물러나, 청주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노라. 묻노니 내 집 찾아오던 손님들이여, 오늘은 몇 사람이나 오셨는가. (避賢初罷相, 樂聖且銜杯. 爲問門前客, 今朝幾個來.)
―‘좌승상직에서 물러난 후(파상작·罷相作)’ 이적지(李適之·694∼747)
재상직을 내려놓고 음주나 즐기자니 이 무슨 황당한 발상인가. 주연을 열어 친구가 얼마나 모이는지를 가늠해 보는 게 푼수짓 같아 보이기도 한다. ‘현자에게 양보한다’는 그럴싸한 핑계에 더해 이참에 평소 좋아하던 청주나 실컷 즐기자는 명분까지 생겼으니 음주광이라면 다시 없을 호사(豪奢)인지도 모르겠다. 하나 당시 시인은 말 못 할 압박감에 시달리던 처지. 당 현종이 양귀비를 총애하면서 국사를 재상 이임보(李林甫)에게 일임하자 조정은 간신배들이 득세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른바 청류(淸流) 그룹으로 인정받던 시인과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배척당하자 시인은 한직을 자청하며 물러선다. 그러자 문전성시를 이루던 집안이 일시에 적막강산이 되고 만다. 염량세태가 이런 것이구나. 시인의 시니컬한 실망이 행간에 묻어난다.
예부터 청주는 성인, 탁주는 현자로 비유해 온 사례를 원용하여 시인은 현자, 탁주, 간신배를 하나의 이미지로 아우르고 있다. 후일 두보는 ‘청주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노라’라는 이 시구를 기억해 내서 이 시인에 대해 ‘좌승상 날마다 만 냥이나 쓰며, 고래가 백천(百川) 삼키듯 술을 마셨지. 입에 청주를 달고 살면서 자칭 탁주는 피한다 했지’(‘음주에 빠진 여덟 신선’)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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