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천양희(1940∼ )
일 년 중에서 가장 밤이 긴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긴 어둠의 날은 ‘동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올해가 이제 다 끝나간다고. 그러니 서둘러 정리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이 시기에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해왔던가. 돌아볼 것은 돌아보고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털어낼 것은 털었다. 그렇게 남길 것과 지울 것을 구분해야 할 때가 다시금 오고 있다.
돌아보면 매번의 12월은 기쁨과 환희, 후련함과 뿌듯함 쪽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후회, 미련, 자책에 가까웠다. 뭘 그리 잘못했을까. 명확한 이유가 없어도 어쩐지 아쉬운 것이 연말의 소회다. 더 잘 살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더 잘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떠돈다.
12월이 아니라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런 편이다. 잘 살아보고 싶었고, 하루하루 충실했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잘 살기란 참 쉽지 않았다. 우리 잘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도 술술 풀리는 것은 휴지뿐이다. 이 시인도 삶의 단추 하나 제대로 채우기란 참 힘든 것이라 말한다. 단추를 채울 때마다 생각이 날 시다. 올해 얼마 남지 않았다. 인생의 단추야 제발 좀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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