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철중]고비 때마다 한중 관계에 재 뿌린 윤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5일 23시 12분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뜻밖(意外)이고 불만(不满)스럽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의 간첩 혐의 사건과 중국 태양광 설비의 국내 삼림 파괴 가능성을 거론한 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 계엄 사태를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중국 매체의 분위기와 달리 그동안 ‘내정 문제’라며 공식 언급을 피해 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겠다는 ‘변명’의 근거로 중국을 끼워 넣자 발끈한 셈이다.


韓 계엄 사태에 대한 中의 관심과 우려


윤 대통령이 국가 안보와 경제 위기 상황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취지로 중국을 담화에 포함시켰다 하더라도 온 국민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특정 국가를 언급한 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으로서도 사실관계를 떠나 황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중국 외교부가 브리핑에서 다른 정부나 인사들의 행태에 대해 반박할 때 ‘뜻밖(意外)이다’는 표현을 쓰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외교부는 윤 대통령 담화 다음 날인 13일 “한중 관계 발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에는 변함없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터무니없는 망발’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관영 매체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자 탄핵을 무마하려는 의도”라고 평했다. 더욱이 애국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 누리꾼들은 이번 발언을 한국을 폄훼하는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한중 관계의 변수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선 중국과 대만의 양안 갈등과 관련해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만 문제를 내정이라고 여기는 중국은 당시 한국에 대해 ‘불장난’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맹비난했다.


불똥 튄 한중 관계에 빠른 수습 나서야


지난해 발언과 이번 사태가 ‘최악의 타이밍’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지난해 윤 대통령의 발언은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 이후 외국 가수의 중국 내 공연을 재개하는 등 한한령(限韓令) 해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상황에서 나왔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2012년 집권 이후 시 주석이 한국 기업을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올해 5월까지 미뤄진 것도 윤 대통령의 대만 발언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번 계엄 사태 역시 벌써부터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16일 귀임 예정이던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의 귀임과 김대기 대사 내정자의 부임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정 대사는 대사관 직원 갑질 논란과 함께 야권으로부터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인물이다. 김 내정자 역시 자신을 임명한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를 당한 상황이라 설령 부임을 하더라도 적극적인 행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와 협의에도 영향이 있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트럼프 2.0 시대’를 앞두고 동북아 정세를 놓고 한중일 3국이 치열한 ‘밀당’을 해야 할 시점에 대통령도 대사도 온전치 못한 상황인 셈이다.

14일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대통령 직무 정지로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일단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상처받은 국격을 회복하고, 한국 외교를 정상화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고비#한중#관계#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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