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에 걸친 시리아의 독재 체제가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시리아를 철권 통치했던 바샤르 알 아사드 전 대통령(59·사진)이 반군의 공세에 밀려 이달 8일 러시아로 도피한 것입니다.
다마스쿠스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안과 의사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지만 1994년 형 바실 알 아사드가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운명이 급격하게 바뀝니다. 시리아로 돌아온 아사드 전 대통령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후계자로 지명됐습니다.
2000년 아버지 사망 후 단독 후보로 출마한 그는 무려 99.74%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시리아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에 불과했기에 시리아 의회는 선거 직전 40세 미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헌법을 뜯어고치기도 했습니다.
집권 초반 아사드 전 대통령은 개혁 이미지를 내세웠습니다. 정치범을 석방했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며 경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아버지 최측근을 숙청하며 반부패 캠페인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11년 중동에 불어닥친 ‘아랍의 봄’ 여파로 시리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낙서를 쓴 학생들이 체포돼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시위가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 시리아 주요 도시로 확산된 것입니다.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선 아사드 정권은 유독가스를 살포하고 반대파를 납치하는 반인권적 행위로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런 탄압은 13년 동안의 내전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약 60만 명의 사망자와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660만 명의 난민이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아사드 전 대통령은 ‘냉전 이후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내전 중에도 아사드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은 부패와 사치를 이어갔습니다. 또 작년까지 그는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여는 등 국정을 수행하는 데 무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북서부에서 세력을 키운 반군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민심을 잃은 아사드 정권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수도 함락 직전 아사드 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있는 러시아로 도피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선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중동의 다른 독재자에게 경고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번을 계기로 제2의 ‘아랍의 봄’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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