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 우리는 왜, 언제부터 동지에 팥죽을 먹게 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은 그 기원을 “전염병 예방”에서 찾는다. 세종 16년 실록에는 전염병의 치료법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베로 만든 자루에 붉은 팥 1되를 담아 우물 안에 넣었다가 3일 만에 꺼내 온 식구가 27알씩 복용한다”라고 적고 있다.
조선 후기 윤기 선생이 쓴 무명자집이나 실록에는 “공공(물과 추위를 관장하는 신)의 아들이 동짓날 죽었는데 역질을 퍼뜨리는 마마 귀신이라는 역귀가 됐다. 이에 공공이 생전에 아들이 팥을 싫어한 사실을 기억하고 팥죽을 쑤어 먹고 역질을 막았다”라고 적혀 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실학자인 이익의 성호전집에도 “동지에는 찹쌀가루로 새알심(鳥卵心)을 만들어 팥죽에 넣어 끓인 다음 사당에 올려 제사 지내고 팥죽을 대문의 문짝에 발라 재앙을 없앴으며 이웃에도 돌려 나눠 먹었는데 이를 ‘동지팥죽’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팥은 한여름에 종자를 심어 싹이 나오고 가을이 끝날 무렵 결실을 맺는다. 팥은 화기(火氣)를 받기 때문에 붉고 작으며 서늘한 바람과 이슬 사이에서 열매가 맺히므로 화가 물러나는 곳에 화기를 끌어오는 기능을 한다. 팥은 형상으로 볼 때 콩팥을 닮아 크기가 작으며 견고하고 붉은색은, 태양 같은 양기를 받은 것으로, 차가운 곳에 따뜻한 양기를 더해 준다는 뜻이다.
한의학에서 치료의 핵심은 체온을 올려 양기를 보강하는 것이다. 사실 의사(醫師)라고 할 때 한자 의(醫)자도 아래에 술(酒) 자가 떡하니 받치고 있다. 술을 마시면 체온이 올라가듯 의사의 가장 중요한 치료는 온기를 더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진화생물학에서 감기를 보는 관점 또한 이런 한의학적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생리학자 맷 클루거는 한 실험에서 감염된 도마뱀들이 체온을 2도 정도 올려줄 곳을 찾지 못하면 죽기 십상이며 새끼 토끼도 똑같이 병에 걸렸을 때 체온을 올려줄 따뜻한 곳을 찾지 못하면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보고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양기가 가장 작아지는 시점인 동지에 단단하고 농밀하게 양기를 축적한 팥을 통해 면역력을 올리겠다는 선현들의 지혜는 약식으로 의미가 있다.
팥의 으뜸 작용은 이뇨 작용을 돕고 부기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은 재위 41년 간경화로 인해 아랫배가 모두 부었는데 팥을 주요 약재로 한 적소두탕을 복용하고 부종이 호전됐다. 조선의 장수왕 영조도 뺨이 부어오르자 팥으로 고약을 만들어 붙였다. 팥의 이뇨 작용이 비만 환자의 다이어트법이 될 수도 있다는 기록도 있다. 동의보감 외형편에는 “오랫동안 먹으면 살빛이 검어지고 여위게 한다. 따라서 지나치게 살찐 사람이 먹으면 좋다”라고 나온다. 팥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이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귀가 솔깃한 대목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붉은 고추를 끼워 달기, 손톱에 붉은 봉선화 물들이기, 담 밑에 맨드라미 심기 등, 이 모든 것이 귀신의 침범을 막는 주술적 목적이었다. 붉은 팥죽에는 그런 염원도 담겼다. 인체 속에 숨어 있을 나쁜 사기를 없애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건강, 행복에 대한 조상들의 소박한 염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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