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몇 달간 전략적 외교 정책 정지될 듯
국회, 당면한 외교 목표 초당적 설정 시급
국제사회에 ‘민주주의 열정’ 울림 줄 필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이 기간 동안 국제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한국의 외교 정책 환경을 결정할 것임은 분명하다. 예년 같으면 올 한 해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하고, 내년도 정세 예측과 한국 외교의 과제를 선별해 대비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국에서는 한 달 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다. 2기를 맞이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4년 단임의 대통령이다. 취임 당일부터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가 휘몰아칠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대상은 중국이다. 바이든 정부 말기에도 대중 관세를 인상한 바 있으며, 트럼프 정부 역시 중국에 대한 60%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다각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중국 역시 보복 관세를 비롯한 다양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어, 내년 초 미중 관계는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전을 약속한 만큼, 협상이 진전되면 유럽의 외교안보 지형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러 동맹으로 우크라이나에 파병한 북한의 입지 역시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미 쿠르스크 지역의 전선에서 북한군이 교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우크라이나 종전 이후 북-러 관계의 변화와 북한의 향후 대외정책에도 변동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적이고 양자적인 거래 외교에 대비해 많은 국가들의 대미 외교가 경쟁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워싱턴을 향한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의 러시가 시작되고 미국의 제한된 정책자원을 흡수하려는 우선순위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다.
향후 수개월간 한국의 전략적 외교 정책은 정지될 가능성이 크다. 대선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외교 정책에 대한 제언을 내놓더라도 이를 실행할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상반기의 도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 북한이 초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단락되고 북한의 도움에 대한 러시아의 절박함이 완화될 때 북한은 새로운 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 새로 출범한 트럼프 정부의 주의를 끌기 위한 핵미사일 실험이나 대남 도발 가능성도 상존한다. 일관된 대북정책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북한의 도발이 평소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사태가 안정되어 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를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조기에 추진한다면, 한국의 일관된 대응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도 전례 없는 기회로 여겨질 것이다.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자국의 핵미사일 안보를 추구하면서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이미 여러 차례 예고했다. 10%의 보편 관세 부과 가능성과 함께 한미 경제 관계 전반에 도전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방위비 압박 역시 고조될 것이다. 이미 2030년까지 방위비 분담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재협상을 지시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대미 투자 약정,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 그리고 한미 동맹 기여도 등 통계와 자료에 근거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자산이 충분하다. 조속한 한미 정상회담으로 설득할 기회를 놓치게 된 지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중 관계 역시 도전의 파고는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중국인 간첩 행위나 중국산 태양광 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은 한중 관계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대중 정책을 적대적 정책으로 규정하는 흐름도 유익하지 않다. 미중 관계가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는 동안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최대한 전략적 공간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유념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생각해 본다. 첫째, 한국의 외교 환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초당적으로 서둘러 당면한 외교 정책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국회에서 외교 전략에 대한 기본 방향이 제시되어야만 관료들이 현상 유지를 넘어 전략적 외교를 추진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외교를 위해 당파적 이익을 넘어 코리아 퍼스트를 제대로 펼치는 정치적 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 국민이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외교로 흡수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국력에 기반한 지정학이 판치는 국제정치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던지는 울림은 크다. 한국에서 이룩한 성숙한 민주주의가 세계를 이끌 외교 정책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전략적 내러티브를 제시할 때, 위기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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