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되지 않은 생(生)우유(raw milk)를 마시지 않도록 권한다.’(미국 농무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맥도널드 햄버거의 대장균 사태를 일으킨 양파를 리콜한다.’(미 식품의약국·FDA)
‘시리얼, 간식, 음료, 사탕에 들어가는 적색 색소의 사용 금지가 임박했다.’(NBC방송)
최근 미국이 ‘식품안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유, 양파, 시리얼 등 먹거리 안전에 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당국과 언론이 잇따라 관련 경고와 보도를 내놓고 있는 것.》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앞두고 이 같은 식품안전 및 보건 정책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복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KJ)는 “백신이 소아 자폐를 유발한다” “공공 상수도 내 불소는 암과 골절의 원인” 같은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발언을 일삼아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그가 복지부 수장이 되면 먹거리 안전 우려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 조류인플루엔자 인간 감염 우려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하면 즉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H5N1)에 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가능성에 대비하라.”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행정부에서 식품의약국 국장을 지냈던 데이비드 케슬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미 전역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치명적인 치사율과 빠른 확산력을 가진 이 바이러스는 그간 조류 사이에서만 감염되고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 초 미국 내 소들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최근에는 생우유에서도 이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CDC에 따르면 아직 사람에서 사람으로 H5N1이 퍼진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최소 60명의 미국인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됐고 대부분이 가금류 및 유제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감염자들이 생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해도 생우유를 만지거나 이것이 눈에 튀는 것만으로도 감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우유에는 각종 박테리아성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캘리포니아주의 식품기업 ‘로팜’이 생산한 생우유에서 H5N1이 검출됐다. 이 회사가 만든 생우유는 물론이고 이를 원료로 만든 생크림 등 유제품도 전량 회수됐다.
미국에서는 각 주(州)의 경계를 넘어 판매되는 우유는 반드시 저온 살균을 해야 한다. 다만 상당수 주는 주 내에서는 생우유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 양파·당근 대장균 감염
식품안전 사고는 주요 채소류에서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맥도널드 햄버거에서 ‘O157:H7’ 대장균 감염 사태가 보고됐다. 그 원인으로 햄버거 속 생양파가 지목되고 있다.
FDA에 따르면 이 사태로 14개 주에서 최소 104명이 발병했다. 콜로라도주의 한 노인은 사망했고, 34명이 입원했다. 맥도널드발 ‘양파 공포’에 버거킹, 피자헛, KFC, 타코벨 등 패스트푸드 기업들은 주요 메뉴에 생양파를 넣지 않기로 했다. NYT는 토양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병원균, 농지에 공급되는 오염된 물, 근처 농장의 동물 배설물 등이 모두 오염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대표 식품 체인 트레이더조스, 웨그먼스, 홀푸드 등에 납품된 유기농 당근에서도 대장균이 검출돼 39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1993년 미국에서 600명 이상이 대장균에 감염되고 4명 이상의 어린이가 숨진 ‘잭 인 더 박스’ 햄버거 사건 이후 육류 관련 식품안전 사고는 줄어든 것으로 분석한다.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류에 대한 조리 온도 기준을 높이는 등 안전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과일, 채소 등은 검사 비율이 극히 낮고 특히 해외 수입 물량은 1% 미만에 대해서만 검사가 이뤄져 안전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입한 채소를 씻어서 먹기보다는 세척 과정을 거쳤다고 표기된 채소, 샐러드 등을 먹는 소비 습관 또한 생채소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 “인공 색소가 ADHD 유발?”
시리얼, 과자, 사탕, 탄산음료 등에 첨가되는 석유 화합물 기반의 인공 식용 색소를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최근 프랭크 펄론 주니어 민주당 하원의원(뉴저지)은 “달콤한 간식이 넘쳐나는 성탄절 연휴를 앞두고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화학 물질이 숨겨져 있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며 적색 3호(체리색) 인공 색소의 사용 금지를 FDA 측에 요구했다. 그는 “이런 색소는 제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외에는 첨가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색소 첨가물은 36종. 그중 9종이 인공 합성 색소다. 인공 색소가 논란에 휩싸인 건 이들 색소가 일부 민감군 어린이들에게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와 유사한 신경계 병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속속 제기되면서다.
캘리포니아주는 2021년 “합성 식용 색소를 섭취하면 일부 민감군 어린이에게 과잉 행동 및 기타 신경 행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에는 “2027년까지 주내 공립학교의 음식 및 음료에서 FDA가 승인한 9가지 인공 식품 염색제 중 6가지를 금지한다”는 법안도 마련했다. 뉴욕, 일리노이주 등에서도 올해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다.
비영리기관인 미 공익과학센터의 토머스 갈리건 수석 과학자는 NBC 인터뷰에서 “이러한 색소가 실제로 어린이의 행동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 임상시험이 27건 있었다”고 밝혔다. 전 FDA 수석 고문 겸 전 농무부 차관보인 제럴드 맨더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겸임교수 역시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완화하는 것보다 낫다”며 색소 규제에 힘을 실었다. 다만 아직까지 FDA 자문위원회는 “인공 색소와 소아 과잉 행동의 연관성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 지명자 또한 식용 색소 반대론자다. 그는 “식용 색소는 암과 관련이 있다”며 “(장관에 취임하면) 고도로 가공된 식품 및 식품 첨가물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상당수 전문가 또한 백신, 불소에 관한 그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지만 색소 등 식품안전에 대한 주장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NBC에 따르면 미 식품업계는 연간 최소 140억 달러(약 19조6000억 원)를 광고에 지출하고 있다. 규제 기관에 대한 로비에도 엄청난 돈을 지출하는 만큼 케네디 주니어 지명자가 색소 금지에 관한 소신을 실제 정책 집행에 반영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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