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심각한 불황기였다.’ 서양 근대역사의 화려한 서막을 알리는 르네상스가 경제적으로는 장기 불황기였고, 이 때문에 이 시기 미술은 비정상적인 문화소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 학설을 처음 발표한 중세 경제사학자 로버트 로페즈(1910∼1986)는 학술대회장에서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뭇매를 맞을 지경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르네상스 불황론’은 르네상스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명작들이 계속된 경제난 속에서 지배층이 꿈꿨던 허구적 세계의 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연 화려한 르네상스 미술은 불황 속 지배층의 ‘과시적 소비’나 정서적 도피처에 불과했을까?
이상향 담은 ‘좋은 정부가…’ 벽화
르네상스 불황론에 따르면 중세 경제는 1300년경 고점에 이른 후 자연재해에 의한 기근과 거듭된 전쟁으로 금융 시장 붕괴를 맞고, 여기에 결정적으로 1347년부터 시작된 흑사병에 의해 파국을 맞는다. 특히 흑사병의 충격으로 도시 인구가 30∼60%까지 감소하는데, 1600년이 돼서야 이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유럽은 1347년부터 1600년까지 대략 250년 정도 장기 불황에 빠지는데 이 시기가 정확히 르네상스 시대와 중첩된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호황도 있었기 때문에 불황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이 학설을 반박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확실히 1300년 전후 중세 유럽의 경제 규모가 이후 1400년대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학설은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중세에 대한 재평가와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중세의 암흑을 뚫고 나온 빛이 아니라 중세의 경제적 동력을 밟고 선 문화적 성취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장기 불황론은 르네상스가 언제 시작했느냐에 대한 미술사의 논쟁과도 잘 연결된다. 논쟁은 주로 ‘14세기 발생설’과 ‘15세기 발생설’로 나뉜다. 대부분 미술사학자는 르네상스의 시작을 15세기로 보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14세기를 기점으로 삼는다. 경제적 부흥이 14세기에 이미 시작되었고, 문화예술의 부흥 또한 조토와 단테 등 문화계의 스타들에 의해 이미 시작한 것으로 본다. 다만 이들의 성과가 흑사병에 의해 단절됐다가 15세기에 재점화했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이들의 주장은 르네상스 불황론과 잘 연결된다.
이 같은 논쟁은 중세나 르네상스를 단순히 예찬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14∼15세기의 유럽은 호황과 불황이 교차했고, 이후 불황을 사회적으로 회복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나타난 예술적 성과가 르네상스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4세기 르네상스에 흥미가 간다면 꼭 살펴봐야 할 작품이 있다. 암브로조 로렌체티가 1338년에 그린 ‘좋은 정부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높이 3m, 폭 14m의 대규모 벽화다. 벽화는 좋은 정부가 다스리는 이상적 나라를 그려내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 성벽이 자리하고 왼쪽은 분주한 중세 도시의 모습, 오른쪽은 성 밖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담고 있다.
성 안에 들어서면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신발 가게를 비롯하여 식료품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흥미롭게도 상점 사이로 공부방도 보이는데 여기서 학생들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배경을 보면 건물을 짓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좋은 도시의 모습은 물자와 사람의 왕래가 자유로우며 상품뿐 아니라 지식까지도 거래되는, 상업이 활발한 모습일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림 속 도시가 이 그림이 그려진 시에나의 실제 도시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창이나 맨 왼쪽 위 대성당의 모습이 시에나의 풍경과 닮았다는 관점이 있으나 당시 법으로 금지되었던 공공장소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졌다는 점에서 상상 속 도시로도 해석된다. 아마도 실재와 허구를 적절히 섞어 이상화한 도시의 모습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신발-식료품 등 재화 활기찬 거래
한편 이상화된 도시를 그렸다는 점에서 지난주에 살펴본 ‘태평성시도’와 비교된다. 두 그림 모두 활발한 경제적 활동을 이상화된 도시 기준으로 삼으면서 실재와 허구를 적절히 이용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다. ‘태평성시도’가 그려진 18세기를 조선의 르네상스로 평가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두 그림 모두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던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벽화가 자리한 곳도 인상적이다. 벽화는 시에나의 최고 의결기관인 국무회의 회의실에 그려졌다. 당시 시에나는 1인 통치가 독재의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서 9명의 국무위원을 뽑아 나라를 운영하였다. ‘좋은 정부가 다스리는 나라’의 맞은편에는 ‘나쁜 정부가 다스리는 나라’를 배치하여 국무위원들에게 통치가 가져오는 영향력을 비교하게 하였다. 미술을 통해 통치자로서 걸어가야 할 옳은 길을 명확히 알려준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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