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경쟁사도 비슷한 신제품을 출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언론을 통해 신제품 출시 계획을 공개하는 것이 좋을까? 너무 일찍 알렸다가 실제 출시가 늦어지면 신뢰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경쟁사의 신제품이 먼저 출시된다면 스타일을 완전히 구길 수 있다. 그렇다고 신제품이 완성 단계에 이를 때까지 너무 신중하게 기다렸다가는 경쟁사가 선수를 칠지 모른다. 여기서 최선의 전략은 경쟁사보다 먼저 신제품을 외부에 공개하고 출시도 먼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 출시가 늦어질 위험이 있더라도 경쟁사보다 먼저 공개하는 것이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때론 충분한 준비가 반드시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준비가 부족하더라도 중요한 타이밍에 치고 나가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역사상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전투 중에서 타이밍을 잘 맞춰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63년 게티즈버그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북군 기병사단이다. 북군 포토맥군의 제1기병사단 사단장 존 뷰퍼드 장군은 게티즈버그에서 주변을 정찰하다가 게티즈버그로 집결하는 남군 북버지니아군의 긴 행렬을 발견했다. 이때 통상적인 접근 방식은 후퇴해 북군 지휘부에 정찰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뷰퍼드는 부하 기병들을 말에서 내리게 하고 방어선을 서둘러 구축했다. 기병들에게 보병 역할을 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뷰퍼드 기병사단에는 3000명의 기병과 6문의 대포밖에 없었고 진지를 구축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남군 보병사단을 상대하는 것은 무모한 결정으로 보였다.
하지만 뷰퍼드에게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남군 보병사단이 계속 진격해서 주변 고지를 점령하게 되면 뒤따라오는 북군이 고지를 올려다보며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남군이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워싱턴 지휘부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북군 지휘관들은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줄 알면서도 무조건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뷰퍼드는 중과부적이지만 “남군의 진격을 저지하면서 북군 부대가 고지를 선점할 시간을 벌어준다”라는 목표를 세우고 전투에 임했다. 이에 반해 남군 기병부대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개시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게티즈버그에 도착하는 실책을 범했다. 기병대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북군의 병력 배치, 이동 상황, 게티즈버그 주변의 지형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돌입한 남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패배했다. ‘충분한 준비보다는 일단 치고 나가는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라는 뷰퍼드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다.
다른 한편 1943년 쿠르스크 전투는 독일군이 시간을 끌다가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당시 독일군을 이끈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일군 최고 엘리트로 전차부대를 활용한 기동작전 수립의 대가였지만 히틀러의 간섭을 받았다. 만슈타인은 소련군의 방어 태세가 갖춰지기 전에 신속하게 공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쿠르스크 전투가 동부전선의 주도권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투이므로 1개월 동안 준비를 철저히 해서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새로 개발된 독일 신형 전차 티거의 성능에 매료돼 있었던 터라 티거 전차를 충분히 생산해 쿠르스크에 투입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티거 전차의 생산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자 히틀러는 다시 1개월을 더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공격이 연기된 2개월 동안 소련군도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소련군을 이끈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는 민간인 여성들까지 동원해 독일군 탱크가 건널 수 없는 깊은 도랑을 팠다. 도랑과 지뢰로 강화된 탱크 저지선에 막혀 속도가 떨어진 독일 탱크부대가 우왕좌왕 혼란에 빠지자 소련군이 급강하폭격기의 공중 폭격과 포병부대의 철갑탄 포격으로 공격을 해왔다. 소련군의 공중 폭격과 포격으로 기갑부대가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독일군의 기동 포위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독일군의 힘이 빠지길 기다리던 주코프 원수가 예비 부대를 투입해 총공세로 전환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배자는 독일군도 소련군도 아닌 아돌프 히틀러였다. 군사 작전에 무모하게 개입해 군사 천재 만슈타인의 손발을 묶고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05호(11월 2호) ‘승패를 가르는 타이밍’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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