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네.” 언니들이 나를 스치며 키득거렸다. 웃음에 얇디얇아서 속이 훤히 비치는 습자지 같은 조롱이 스며 있었다. 시골에서 오래 살았고,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탓에 내게는 어디선가 물려받은 출처 불명의 옷이 많았다. 그래도 눈썰미가 좋았던 엄마 덕분에 브랜드 옷은 아니더라도 깔끔하고 질 좋은 옷들을 깨끗하게 빨아 입고 다녔다. 엄마가 입혀주는 대로만 무던하게 지냈는데 어느새 사춘기가 왔다.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예쁜 옷을 입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의류함에 예쁜 옷들이 버려져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의류함을 들락거리며 옷들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옷 주인은 서울에서 이사 왔다던 예쁜 쌍둥이 자매, 버린 옷을 주워 입는 걸 알아본 언니들은 나를 마주칠 때마다 키득거리며 지나갔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상황이었는데 나는 뻔뻔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 했다. 뭐 어떤가. 누가 버린 예쁜 옷 좀 주워 입으면. 언니들은 그런 내가 건방지고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그 상황을 엄마도 눈치채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엄마는 주워 온 옷가지를 조용히 버리고 나를 ‘명동타운’에 데려갔다.
환한 통유리창에 유행하는 옷들이 그득 채워진 ‘명동타운’은 재래시장 안에 있었다. 생선 팔고 나물 파는 노점들 사이에 덩그러니, 암만 봐도 이질적인 풍경이었지만 유일하게 최신 옷을 파는 가게였다. 쭈뼛하게 선 나를 두고 3000원짜리 티셔츠 중에서도 가장 예쁜 걸 신중하게 고르던 엄마. “딸아, 너한테 예쁘겠다.” 티셔츠를 펼쳐 돌아보는 엄마를 천장 조명이 내리비췄다. 시끄러운 최신 가요가 쿵쿵 내 가슴을 울렸다. 그렇게 한 벌 두 벌, 내게도 예쁜 옷이 생겼다. 명동타운에서 산 옷들은 하나같이 값싸고, 디자인 예쁘고, 옷감 나쁘고, 봉제선 삐뚤고, 보풀이 일었다. 그래도 나는 ‘쇼핑’이라 부를 법한 엄마와의 데이트가 좋았다.
그날도 엄마와 쇼핑하고선 노점에서 뜨거운 어묵을 후후 불어 먹었다. 옷 가게 이름이 왜 명동타운일까? 내 물음에 엄마가 어묵 국물을 홀짝거리며 대답했다. “서울 사람들은 명동에서 데이트한다더라. 크리스마스엔 명동 거리가 사람들로 꽉 찬대. 저런 옷 가게가 100개쯤은 있을걸?” 명동 거리를 상상하자 어질해졌다. 엄청나게 환하고 시끄럽고 복잡하겠네. “너도 아가씨 되면 예쁘게 입고 명동에서 데이트도 하고 그래.” 엄마가 가만히 내 머리칼을 넘겨주며 “우리 딸 예쁘네” 하고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가난도 조롱도 자존심도 몰랐던 게 아니었다. 그냥 매 순간 뻔뻔하고 끈덕지게 이겨냈던 거지. 아가씨가 되어서도 싸구려 티셔츠에 낡은 신발을 신고도 씩씩하게 뛰어다닐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런 기억 덕분에. 연고도 없는 ‘명동’을 떠올리며 가슴께가 뻐근해지는 것도.
조악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는 명동타운에서 젝스키스의 ‘커플’이 울려 퍼지던 겨울이었다. 커플로 산 싸구려 목도리를 두르고 활짝 웃던 우리. 어린 나도 젊은 엄마도 예뻤다. 우리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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